문재인 정부의 출발은 남달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말미암아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따로 인수위를 만들 시간조차 없이 대통령에 취임했고 곧바로 정부가 꾸려졌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겠다” “야당은 국정 운영의 동반자”라는 취임사에서의 공언은 허언이 돼버렸고 그 후로 5년간의 인사는 전문성을 무시한 철저히 자기 편 사람들만을 골라 쓰는 내로남불 인사의 연속이었으며 조국 사태로 그 정점을 찍었다. 임기 초 박근혜 정부 사람이라고 찍힌 사람들은 갖은 수모 끝에 온갖 방법을 동원해 자리에서 끌어내려졌고 그중 몇몇은 비참한 최후를 맞기도 했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정상적인 선거 과정을 통해 당선 후 두 달여간의 권력 이양기가 있고 지금 인수위원회가 꾸려져서 활동하고 있다. 앞으로 5년간의 정책 목표를 설정하고 새로운 정부 조직과 그곳에서 일할 인재들을 고를 시간이 생긴 것이다. 기존 청와대와 정부에서 겪었던 국정 운영에 대한 경험을 잘 정리해서 새로이 들어설 대통령과 정부에 인수인계를 하는 시간이다. 윤석열 정부 초대 내각의 인사청문회가 정치권의 거대 이슈 블랙홀로 떠올랐다. 국무총리 및 장관 후보자들의 재산 형성, 자녀 입시·병역 비리를 둘러싼 의혹이 계속제기되고 있지만 후보자 해명이 크게 미흡하거나 상식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어서다.
TV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이 12%라는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파죽지세다. 배우들의 열연과 속도감 있는 전개, 생생한 영상 등이 인기를 끄는 요인이다. 거기에다 권력의 향방에 따라 왕조의 운명까지 갈리는 부분은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정권교체기에 있는 현 상황과 맞물리기까지 해 관심도가 더 높이진 듯도 하다. 드라마와 함께 태종 이방원의 인사와 관련된 통치철학인 ‘지공(至公)’도 요즘 들어 각광받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장관인사 지명과 관련해 화두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지공은 ‘지극히 공정한 경지, 가장 공정한 경지’라는 의미다. 태종 리더십을 꾸준히 연구해온 이한우 (사)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은 “태종은 군주로서 언행에 있어 일관되게 지공을 추구했다”고 했다. 태종은 ‘곧음’과 ‘곧지 않음’을 기준으로 신하를 판단하고 철저하게 능력 중심으로 인재를 등용했다. 최근 펴낸 ‘이한우의 태종 이방원’이라는 책에서 다룬 내용이다. 때론 반대세력을 품어 등용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인사에서만큼은 사사로운 감정은 철저히 배격했다.
실제로 태종은 이전 정권의 사람인 조준, 고려의 충신이었던 이색의 제자인 권근, 고려 말과 조선 초기 최고 무기전문가였던 최무선의 아들 최해산 등 능력 있는 인재들을 중용했다. 최대 정적이었던 정도전의 아들 정진을 판서까지 올리기도 했다. 반면 지공에 어긋나면 친족과 공신을 막론하고 냉정하게, 때론 무자비하게 제거했다.
태종처럼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는 능력을 갖추고 또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맡겨 제대로 쓸 줄 알면서, 그 사람이 최대한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리더십의 첫째 조건이다. 훌륭한 리더는 비록 상대진영이라 할지라도 인재를 알아보는 눈을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판단력까지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태종과 달리 역사적으로 볼 때 분노로 가득 찬 리더는 사람을 볼 줄도 모를뿐더러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도 못했다. 최근에 나온 ‘분노의 시대 이순신이 답하다(방성석 지음)’는 책에서 지은이는 임진왜란 당시 리더들 내부의 갈등과 이로 인한 증오와 분노로 나라가 패망 위기를 맞았다고 분석한다. 분노의 중심은 선조 임금과 경상 우수사 원균, 그리고 전라 좌수사 겸 통제사 이순신이었다. 죄 없는 이순신을 향한 선조의 분노는 나라 전체를 위험에 빠트렸다.
이순신에게 밀려난 원균의 분노는 조선 수군의 궤멸로 이어졌다. 분노로 인해 태종이 말한 지공이 흐트러진 결과다. 억압 받았던 이순신이라고 해서 분노가 없었을까. 하지만 그는 분노를 다스릴 줄 알았다. 난중일기를 쓰고 시를 지으며 분노를 관리했다. 이순신마저 분노를 표출하고 상대를 증오하고 싸움에 몰두했다면 과연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을까.
태종과 이순신에게 배울 점은 위기 극복 능력이다. 이는 ‘곧음’을 기준으로 내편과 상대편 구분 없이 인재를 등용하는데서 출발한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잘 관리하고 조절하는 리더였다는 점도 다시 볼 일이다. 그래야 지극히 공정한 경지인 지공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당선인 역시 후보 시절부터 ‘공정과 상식’이라는 구호를 전면에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연히 장관 지명 뿐 아니라 다른 임명직에도 ‘지공’을 염두에 둘 것이다. 어느 정도 자기 안의 분노를 다스리는 과정도 거쳤으리라.
정권 교체기마다 하는 말이지만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 하는 말은 진리다. 천하의 인재를 발굴하는 일도 국민 눈높이에 맞아야 하고 불편부당(不偏不黨)해야 한다. 아주 공평해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태종처럼 일관되게 ‘지공’을 추구해야 인사도 만사가 된다.
문재인 정부는 탄핵 정국으로 지금 윤 당선인 측이 겪는 권력 이양기에서의 신구 권력 갈등을 경험하지 못했다. 점령군이 폐허가 된 점령지에 들어와 마음대로 깃발을 꽂았던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이나 부동산 문제 등 문재인 정권의 잘못된 정책들 뒤에는 불공정하고 비상식적인 인사가 그 근본적인 원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전문가가 아닌 자기 쪽 사람만을 가져다 쓴 결과이다. 오죽하면 윤 당선인의 공약 중에 전문가를 적재적소에 사용하겠다는 상식적인 이야기가 새롭게 들릴 정도인가.
고위 공직자 후보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한다지만 국민의 기억에는 청문회가 본래 취지에 맞는 결과를 보여준 사례가 거의 없다. 인신공격과 트집 잡기가 난무하거나 후보자들이 “송구하다”면서도 버틴 장면 등이 대부분이다. 대통령이 청문회 결과를 묵살하고 후보자를 임명한 경우는 문재인 대통령 때만 해도 34명이나 됐다. 국민은 임명권자가 공정과 상식의 잣대에 맞는 후보자를 지명하고 보여주길 바라고 있다. 정치권도 억지성 발목잡기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싸움판 청문회를 지켜봐야 할 국민의 마음은 편치 않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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