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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사과’의 이런 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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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사과’의 이런 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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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7.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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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 … 저의 발언에 대해 송구하다. 특히, 청년 여러분께 상처를 주었다면 사과드린다.”

살다가 저런 말을 들었다면 우리는 어떤 기분이 들까? 저 말을 한 사람도 (다른 자리에서) 저런 얘기 들었다면 “저런 싸가지 없는 놈을 봤나!” 했을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어떤 이의 입장에서도 진리다. 

기본이 안 된 언사(言辭)는 대부분의 갈등의 씨앗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는 속담도 있지 않는가. 

말은 그 사람의 마음에서 나온다. 그 마음이 작은 우물일수도 있고, 우주(宇宙)의 영겁(永劫 영원함)과 광활(廣闊 넓음)일 수도 있다. 마음처럼, 작은 듯 큰 것이 말이다. 또는 말은 큰 듯 작기도 하다.

최근 정당 대표인 한 정치인의 ‘어지러운 발언’과 국민 특히 청년층 반응, 그에 따라 전개된 상황에 밀려 그가 선택한 ‘사과’를 두고 말들이 많다. 

사과(謝過)는 과(過)한, 잘못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것(謝)이다. 서두(序頭)의 인용은 그 정치인의 사과 또는 사과문을 보도한 기사 일부다. 

굳이 이번 상황이나 그의 이름을 상세히 드러내지 않는다. 그 사람 하나의 사례(事例)에 그치는 것이 아니어서이다. 정치인은 여야(與野) 불문,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행세) 좀 한다는 사람들의 ‘사과의 어법(語法)’ 또는 말투가 대개 저렇다는 얘기다.

‘정치인의 사과’는 이렇게 하는 것. 이런 틀이 오래 쌓여 굳어진 것 같다. 그러나 이는 그의 ‘상전(上典)’이어야 할 정치소비자(국민)에 대한 큰 실례(失禮)이자 무지를 드러내는 행실이다.

부덕(不德)의 소치(所致)니 불찰(不察)이니 유감(遺憾)이니 하는 아리송한, 경우에 닿지 않는 표현의 남발 중 하나일 터. 배우지 못해 그런 것일까? 하여간 싹수없다는 지적은 당연하다.

먼저 사과의 정석(定石) 3제(題)을 일러주리라. 요체(要諦)는 진정성이다. 

1. 사과는 완전해야 한다. 위의 사례처럼 ‘…했다면, 미안하다.’는 조건부 사과가 가장 저질이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또는 ‘나는 실은 사과할 뜻이 없는데 시끄러우니까...’ 하는 속내가 저 속에 도사리고 있다. ‘결과적으로 피해를 주었다고 생각한다.’는 어법도 비겁하다. 

2. 사과는 구체적이라야 한다. 가령 ‘내 어떤 말(행동) 때문에 아무개 씨가 어떤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해 사과한다.’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 두리뭉술, 사과를 하긴 했다오 하는 흉내 내기는 하지 않음만 못하다.

3. 사과는, 그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 돈으로, 또는 마음으로 갚겠다거나 앞으로 그런 뭇된 언사를 되풀이하지 않고 주위를 먼저 살피겠다는 등의 약속이 필요한 것이다. 상대편이 어떤 보람(열매)을 가질 수 있어야 사과다. 

이런 조건에 어긋나면 사과가 아니다. 변명이나 핑계 아니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도 아니면 사기다. 

“미안해. 그런데 그게 말이야, 실은 다 내 잘못이라 할 수는 없어.”라는 말을 사과라고 했다면 이는 상대를 모욕하려는 뜻이기 쉽다. 아니면 또 다른 잘못(도발)을 준비하고 있거나. 

특히 세금으로 봉급 받고, 업무에 세금을 사용하는 선출직이라면, 다음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냉엄한 결단’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언론인이나 평론가들도 정치인의 이런 (언어적) 싸가지에 대해 이젠 국민 입장에서 평가하고 지적해야 한다. 국민의 역습(逆襲)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르는 이는 기본자격 미비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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