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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유감(遺憾)은 과연 미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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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유감(遺憾)은 과연 미안한가?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2.10.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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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마음이 섭섭함’은 사과가 아니다. 싸가지다.

졸지에 미사일을 제 땅에 거꾸로 쏘아 국민을 큰 위험에 빠뜨린 대한민국 군대가 ‘유감스럽다.’고 했다. 공식적인 입장 표명(表明)이 여지없이 ‘유감 타령’일세. 

‘마음에 섭섭함이 (좀) 남았다.’는 말을 사과의 뜻으로 알아들으라는 폭력적 의미부여는 시건방지기 짝이 없는 짓거리다. 그 관객(대상)이 세금을 부담하는 국민이라면, 머슴이 주인에게 대드는 꼴이다. 허망한 갑질 일세. 

학계 언론 등이 늘 지적하는데도 유감 타령이 끊이지 않는 것은 문자의 해독 능력 즉 문해력(文解力)의 부족 탓이리라. 일상에서 좀 덜 쓰이는 한자말이니 ‘뭔가 있어 보이는 것’ 일까? 유식하게 보이려는 의도가 벌인 무식한 언어구사다. 싹수 노랗다. 

좀 섭섭한 일인가? 개운치 않은, 껄쩍지근함이 목구멍에 좀 남았다는 것인가? 미안하거나 죄송한 것이 아니라고? 능청맞게 제 못난 것 감추려는 속셈이 이런 싹수없는 어법(語法)을 지었겠다. 주인인 국민에게 주인행세를 하다니. 유감이 약방의 감초던가?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러운 느낌이 남아 있는 듯함, 사전이 푼 ‘유감’의 뜻이다. 또 ‘생각대로 되지 않아 아쉽거나 한스러운 것’ ‘언짢게 여기는 마음’이라고도 했다. 

남길 유(遺)와 섭섭할 감(憾)의 합체다. 여러 글에서 ‘유감’이란 단어 뒤에 괄호 하고 有感 遺感 有憾 등의 한자를 넣은 (틀린) 경우를 본다. 물론 있을 유(有)와 느낌 감(感), 또는 발음이 같은 憾 등의 문자를 합쳐 ‘어떤 뜻’의 유감을 만들 수는 있다. 

‘우리의 의도에 맞는 뜻인가?’를 따져야 한다. 우리 의도의 유감은 遺憾이다. ‘끼치다’ ‘남기다’는 遺와 ‘섭섭함’ ‘마음이 불안함’ 정도의 憾이 합친 억지춘향 격(格) 정치적 언어 ‘유감’을 말하는 것이다.  

언어의 활용에 덜 익숙한 이들이 대개 이 유감이란 말을 쓴다. ‘사과의 뜻’으로도 유감 타령을 하더니, 항의하거나 시비를 거는 데도 유감이 쓰인다. 지난 시절 TV 봉숭아학당 식의 우화적(寓話的) 풍경이다. ‘웃기는 짜장면’이란 풍자어도 떠오른다.

여권 정당인(政黨人)인 도지사가 “군 당국, 강릉 미사일 낙탄 늑장 대응에 유감”이라 했다는 보도가 신문에 떴다. ‘유감을 표했다.’는 것. “너 나한테 감정 있어? 왜 이따위로 놀아?”할 때의 ‘감정’과 같은 분위기다. 한자는 憾情이다. 이때의 遺憾도 같은 맥락이다. 

‘느낌’의 뜻으로 발음이 같은 感情이나 有感과는 딴판이다. 마음 심(忄, 心과 동자)과 느낌 감(感)이 합쳐져서 마음의 ‘어떤 상태’가 빚은 느낌이란 의미가 됐다. 섭섭하거나 한(恨)스런 감정(感情)을 표현할 때 쓰자는 일종의 (사회적) 약속이 세월 속에서 굳어진 말이겠다.

꼼꼼히 톺아봐도 ‘유감’을 사과로 여겨야 할 까닭은 없다. ‘잘못 했으니 용서해 주세요.’가 아니다. 다만 ‘내 기분이 좀 꺼림칙하다’ 정도의 뜻이다. 사과하긴 싫은데 사과했다는 생색을 내기 위해, 흐지부지 본질을 덮는 음산한, 엉큼한 언어인 것이다. 오염된 말, 안 쓰는 게 좋다.

악순환의 고리다. 정치인은 내뱉고 언론은 받아쓴다. 그래서 자칫 우리 시민 중 일부는 이 말을 ‘잘못했다’ ‘미안하다’ ‘용서하라’라는 말의 세련된 표현으로 아는 이들도 있겠다. 

용서를 비는 마음은, 말도, 진지한 경건(敬虔)함이 첫째 조건이다. 주인을 깔보는 버르장머리가 ‘유감’을 재생산하는구나. 그 고리 끊자.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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