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매일신문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지방시대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문제열의 窓] 긴긴 동지의 밤이 가면 해는 길어진다
상태바
[문제열의 窓] 긴긴 동지의 밤이 가면 해는 길어진다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2.12.20 10: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12월 22일은 24절기의 스물두 번째 절기 동지(冬至)이다. 일 년 가운데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우리나라의 겨울은 사실상 동지가 지나야 본격적으로 추워진다. 동지에는 음기가 극성한 가운데 양기가 새로 생겨나는 때이므로 일 년의 시작으로 간주한다. 이날 팥죽을 쑤어먹었다. 우리 조상들은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나 재앙이 있을 때에는 팥죽, 팥밥, 팥떡을 해서 먹는 풍습이 있다. 또한 동지 때는 추수와 김장이 모두 끝난 농한기로 농민들에게 편안한 휴식을 갖고 봄 농사철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옛날 동지 즈음에는 동어장사도 많이 다녔다. 동어는 숭어의 새끼다. 우리나라 모든 해역의 연근해에 주로 서식하나 강 하구 등 민물과 섞이는 지역에 들어올 때가 많다. 한강하류 김포에서 물살이 역류할 때 동어가 많이 오른다. 동어는 동지부터 입춘 전까지가 제철이다. 동어를 사면 아버지가 저녁상을 차리기 전에 숯을 담은 화로를 방에 들여 놓는다. 그 위에 석쇠를 놓고, 화젓가락으로 숯불의 화력을 조절하면서 동어를 굽는다. 동어를 구울 때는 왕소금을 살짝 뿌려 굽는다. 껍질이 부풀어 오르면서 터져서 타는 고소한 냄새가 방안 가득 찬다. 익은 것부터 꺼내서 뼈째 김장김치에 돌돌 말아 먹는데 참 맛이 좋았다.

추운 겨울날엔 온가족이 만두를 빚었다. 아버지는 밀가루를 반죽해 일정한 크기로 잘라 도마 위에서 얇게 밀어 만두피를 만들어 놓는다. 어머니는 두부를 으깨고, 잘 익은 김치를 송송 썰어 물기를 꼭 짜서 놓는다. 숙주도 끊는 물에 넣고 살짝 데쳐 물기를 짜고 잘게 썰고, 다진 소고기는 밑간 양념재료를 넣고 조물조물 무쳐 재워 준비한다. 준비한 두부, 김치, 숙주, 소고기, 다진 파, 다진 마늘, 참기름, 소금, 후춧가루 등을 큰 볼에 넣고 잘 치대어 만두소를 만든다.

그리고 온가족이 둘러앉아 만두피를 손바닥 위에 올리고 가장자리에 물을 바른 뒤 만두소를 얹는다. 반달형으로 접어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가장자리를 꼭꼭 붙여 만든다. 한쪽에선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찜통에서 만두를 쪄낸다. 아침부터 시작한 일이 점심때를 훌쩍 넘겨 끝이 난다. 저녁에는 만두국을 끊여 먹고 한 겨울 깊은 밤을 달랬다.

동지 전후에는 눈이 많이 내린다. 눈이 많이 내리면 참새들은 먹이를 찾아 마을 인가(人家)로 모여든다. 이 때는 고기가 귀한 시절이라 동네 아이들은 참새를 잡아 구워먹으며 영양을 보충했다. 참새는 겨울철 초가집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그 속에서 지낸다. 밤중에 처마 밑 새 굴에 손전등을 비추면서 손을 집어넣어 잡았다. 잠자고 있던 참새는 꼼짝없이 잡혔다.

또 참새가 잘 모여 드는 마당이나 나지막한 뒷산 양지바른 곳에 낟알을 뿌려 놓는다. 낟알 위에 맷방석을 세워 짧은 막대기로 괴어놓고, 그 안에 새가 날아들었을 때 끈을 당기면 맷방석이 덮쳐 새가 갇히게 돼 잡았다.

나뭇가지에 고무줄을 달아 만든 새총도 있다. 당시 엉성한 새총으로 참새만 겨냥해 당기면 떨어뜨리는 이름난 친구가 우리 동네 있었다. 이 친구도 실수할 때가 있었다. 어느 날 참새를 맞춘다고 쏜 돌이 할머니집 간장독을 맞춰 밑 부분에 금이 갔다. 그 후 보름정도 지난 새해 1월 할머니집이 난리가 났다. 서울에서 내려온 딸에게 올 때 마다 1병씩 담아주던 간장독이 바닥난 것이다.

이 간장은 3년 넘도록 애지중지(愛之重之) 관리해 오던 맛있는 조선간장이라며 할머니는 깊은 시름에 빠지셨다. 딸은 동지섣달에 귀신이 곡할 일로 귀신을 없애야 한다며 빨리 떡을 해 고사를 하라고 간장 값이라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큰돈을 주고 올라갔다. 할머니는 다음날 팥시루떡을 해 장독대에 올려놓고 술잔을 빙빙 돌리며 진지하게 고사를 지냈다. 동네 친구들은 이 떡을 먹으며 앞으로는 장독대 주변에서는 절대로 새총을 안 쏘기로 다짐했다.

그때 새총을 쏜 친구는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특등사수가 되어 우리 동네를 빛내 주었다. 할머니가 귀신을 쫓은 것이 아니라 참새도 살려주고 훌륭한 군인도 만드신 셈이다. 동지섣달. 밤이 길어지니 옛 추억이 생각난다. 이 추운 긴긴 동지의 밤이 지나면 다시 해가 길어질 것이다. 이제 낮의 시간이 시작된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