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놀이
- 황인선作
목을 꺾고 우물 안에 소리쳐 본다
까맣게 올라오는 두려움
깊고 깊음 속에 파란 하늘이 일렁이고
거기에 떠 있는 얼굴 하나
첨벙
심통 난 두레박질로 헝클이기도 하지만
찌그러져 일렁일 뿐
이내 그림판 맞추듯 되살아나는 얼굴
어쩌다 비라도 맞으면
수천 개 바늘에 찔리는 아픔도 있지만
간혹 별 하나 떨어져 박힐 때는
춤추는 풍선인형이다
날파람에 조릿대 휘청거리는 날이면
나팔꽃같이 목을 꺾고
일기예보 보듯 우물을 들여다본다
[시인 이오장 시평]
우물에 관한 시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 작품이 최고의 표현력과 서정성을 지녔다고 단언한다.
우물은 생명이다.
많은 물이 있으나 식수로 사용되는 물은 적은 양으로 정성을 다하여 살피지 않는다면 오염되어 먹지를 못한다.
농어촌은 물론이고 도시에 수도시설이 되기 전에는 모두 우물물을 마시며 살았으므로 우물에 관한 추억은 많을 수밖에 없으나 이처럼 세밀하게 묘사하여 심금을 울리는 작품은 많지 않을 것이다.
깊이를 떠나 우물에 빠진 하늘은 가장 높다.
땅속인지 하늘 밑인지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투명하게 비친 우물 속 하늘은 그야말로 선경이다.
두레박을 넣어 물을 길어 올리기 전에 얼굴이 먼저 비치고 그 얼굴은 평생을 그리워한 대상이다.
그 얼굴에 자기 모습이 일렁이면 쇠붙이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도 매료되어 아무 말도 못 하고 한참이나 생각에 잠길 것이다.
황인선 시인은 여기에 더하여 비 내리는 풍경을 그려 넣어 시의 깊이를 높인다.
수천 개의 바늘에 찔리듯 튕겨 오르는 물방울은 삶의 아픔이다.
그 아픔을 견디며 삶을 이어온 자신은 이미 선경에 들었다.
밤에는 별들이 떨어져 박히고 그것은 상처를 치유하는 풍선이 된다.
우물가에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 조릿대가 흔들리면 기다림에 지친 나팔꽃이 되어 다시 우물을 들여다보는 시인은 하늘보다 깊은 심성을 가졌다.
우물의 추억을 살려 우물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삶을 비춰보는 거울로 우리를 어떻게 비춰주는가를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이다.
[전국매일신문 詩] 시인 이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