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지난 13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현재 3.5% 그대로 유지하기로 동결했다. 올해 2월 이후 4월, 5월에 이어 네 차례 연속 동결이다. 인플레이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진 않았지만, 통계청이 지난 7월 4일 발표한 ‘6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 2021년 9월(2.4%) 이후 2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상승 폭을 기록하며 2%대(전년 동월 대비 2.7% 상승)로 내려온 물가 잡기에 매달리기보다 경제 성장과 최근 새마을금고 사태로 불거진 자금 경색 우려 해소를 우선시한 것으로 보인다.
경기 부진과 제2금융권 불안 등 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은행의 금리 동결은 놀라운 결정이 아니다. 특히 미국과의 금리 차가 이미 커질 대로 커졌음에도 다행히 지금까진 우려했던 자금 이탈 현상이 나타나지 않고 환율이 비교적 안정적이고 외국인 투자 자금이 2월부터 5개월 연속 순유입이 지속됐다는 점이 한국은행의 판단을 뒷받침하는 요인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물가가 목표 수준인 2%로 충분히 수렴한다는 과정에 도달했다는 확신이 들 때 (기준금리) 인하를 논의할 것”이라며, 긴축 기조가 앞으로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시장에서는 벌써 금리 인상 사이클이 끝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제는 실물경기 부진이다. 무엇보다 한국 경제의 동력인 수출이 살아나지 않고 있다. 수출은 이달 1~10일에도 전년 대비 14.8% 줄어들어 9개월 연속된 감소세를 이어갔다. 여기엔 글로벌 경제환경이 어느 때보다 불확실해진 상황이 작용하고 있다. 최대 시장 중국으로의 수출은 올해 상반기 26%나 줄었다. 중국의 ‘리오프닝(Reopening·경제 활동 재개) 효과’가 예상을 밑도는 데다 반도체 등 주력 품목의 수출 부진이 길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고 중국산 제품과의 경쟁도 치열해졌다. 중국이 경기침체 속에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위기에 직면했다. 10일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로 2021년 2월 이래 가장 낮은데다 4개월째 0%대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25%를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은 2021년 헝다그룹 채무불이행 사태 후 침체 일로다. 한국으로선 수출입 전선 정비가 시급해졌다. 게다가 미·중 간 패권 경쟁이 촉발한 공급망 갈등도 큰 부담이다. 각국 정부가 보조금 지원 등을 통해 산업 정책에 깊숙이 개입하고 보호무역 장벽을 경쟁적으로 설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화 긴축 터널의 출구를 향한 길목에도 환율 불안과 가계 부채 리스크 등이 여전히 무겁게 도사리고 있다. 경제·통화 당국은 통화정책의 부작용에 경제의 발목이 잡히는 일이 없도록 면밀한 모니터링과 선제적 조치로 치밀하게 대비해야 함은 물론, 채무조정 지원 프로그램을 가속화 하여 우리 경제에 도사린 ‘빚 폭탄’의 뇌관을 서둘러 제거해 나가야 한다. 가계도 위험한 빚투 유혹에서 벗어나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영끌은커녕 오히려 빚을 줄여 다가올 경기침체와 금융시장의 변동성 위기에 대비해야 할 때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계 대출과 함께 오는 9월 상환유예가 끝나는 자영업자 채무도 시한폭탄이다. 한국은행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가계 신용)가 80%를 넘으면 1년 뒤 경제 성장률이 최대 3% 하락한다는 연구 결과와 함께 경기가 역성장하는 경기침체 발생 가능성도 1~3년 시차를 두고 커지는 것으로 지난 4월 28일 한국은행 학술지 ‘BOK이슈노트’에 가계 신용 누증 리스크를 분석한 내용을 실었다.
우리나라처럼 가계 부채가 100%를 초과한 상황에선 거시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가 더욱 확대할 수 있다는 지적인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기준금리 동결 결정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본적으로 가계 부채는 우려된다.”라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이 작년 106%에서 올해 103%로 내렸는데, 이 비율이 늘어나면 우리 경제의 큰 불안 요소로 볼 수 있다.”라고 밝혔다. 지난 5월 국제금융협회(IIF)가 발표한 ‘세계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한국 가계 부채 비율은 102.2%로 전체 34개국 중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조사 대상 국가 중 가계 부채 규모가 GDP를 넘어선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그런데도 이달 말부터 역전세난 해소를 위해 집주인 대상의 전세금 반환 대출 문턱이 낮아지고, 아파트 입주 물량도 늘어나 대출 증가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가계 대출자들의 원리금 상환 능력엔 이미 적신호가 켜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올해 4월 말 기준 0.21%로 1년 전 0.11%보다 0.10%포인트 올랐을 뿐 아니라 집값이 오르기 시작하던 2020년 4월 0.20%를 앞질렀다. 고금리 급전을 빌리는 대부업체의 연체율도 10%를 넘어섰고, 최근 5년간 1%대에 있던 상호금융 연체율도 2%에 진입해 올 1분기에 2.42%를 기록했다. 결과적으로 해법은 물가안정과 경기회복뿐이다. 얼마나 지속될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금리 동결’이지만 이를 기회로 삼아, 하반기 수출과 내수 회복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가계 부채와 환율 불안 등 경제 ‘싱크홀’에 대한 대비도 철저히 해야 한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