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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203] ‘개딸’과 한국의 팬덤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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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203] ‘개딸’과 한국의 팬덤 정치
  • 서길원 大記者
  • 승인 2023.10.11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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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정당이 팬덤 정치에 휘둘리게 되면 상대에게 양보하는 순간 지지자들이 등을 돌리기 때문에 대화와 타협 대신 자신들의 입장만 대변하게 되고, 이는 결국 스스로에게 내리는 셀프 사망 선고나 다름없다.

대한민국 정치의 앞날이 아슬아슬하고 불안하다. ‘여느 때는 그렇지 않은 적이 있느냐’고 물어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여야가 치졸한 언어를 주고받으며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인 것이야 오래된 일상이지만 이제는 이러한 진흙밭의 개싸움에 극단의 지지층까지 뛰어들고 있다. 개싸움이 사람싸움으로 확전돼 진흙밭에서 함께 뒹구는 꼴이다. 자신과 뜻이 다른 세력을 적으로 규정해버리는 극단의 정치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가 내리막 급경사 길에서 가속페달을 힘주어 밟고 있는 형국이다. 고장 난 자동차가 멈추는 순간은 자체 파열이거나 아니면 거대한 벽에 충돌하는 수밖에 없다.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 이후 당내 가결 파 색출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이 대표의 강성 지지층인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의 목소리가 민주당의 정체성 인양 휘몰아치고 있다. ‘개딸’은 스스로 정치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으며 특정 정치인에 대한 적극적 지지 의사를 드러내며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팬덤 정치의 극단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팬덤 정치는 반드시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유권자의 정치적 관심을 촉진하고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지나칠 경우 팬덤 정치는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가 혐오와 분열을 조장하는 맹신으로 변질되기 십상이다. 지금의 ‘개딸’은 스스로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방향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때다. 민주당을 위해서도 그렇고, 우리의 정치를 위해서도 그렇다.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 이후 민주당 의원 168명의 비명계 성향을 따져보는 ‘수박 당도 감별 명단’이 ‘개딸’ 들 사이에서 나돌고 있다. 수박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으로 비명계 의원들을 지칭한다. 겉은 푸른색의 민주당이지만 속은 붉은색의 국민의힘이라는 의미다. ‘개딸’에게 수박은 트로이 목마처럼 이중 첩자이자 처단해야 할 대상이 되고 있다. 수박으로 분류된 의원들에게 욕설과 악성 댓글을 넘어 살인 협박까지 해댄다. 확증편향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소통하고 자기들끼리만 뭉치는 정치적 부족 주의에 완전히 매몰돼 생각이 다른 사람은 악의 집단으로 치부한다.

그러다 보니 의원들도 이런 강성 지지층 입맛에 따라 소신을 포기당하고, 또는 스스로 포기하고 강성으로 돌변할 수밖에 없다. 대다수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강성 지지층의 행태가 당내 민주주의는 물론 당의 분열로 이어져 당장 내년 총선에도 불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 이에 대한 반증이다. 물론 극단의 팬덤 정치는 민주당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이고 여야 모두에 존재한다. 과거 새누리당을 패배의 길로, 그리고 박근혜 정권을 폭망의 길로 이끌었던 시초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과정에서 나온 다름 아닌 ‘진박 감별사’였다.

‘진박 감별사’는 '진실한 친박인지 아닌지 감별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대통령 개인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 경쟁과 권위주의적 의식이 빚은 정치, 웃지 못할 코미디의 산물이었다. 결과는 어떻게 됐는가. 한마디로 ‘폭망’이었다. 역설이지만 어쩌면 ‘진박 감별사’가 요즘 ‘개딸’이 말하고 있는, ‘적을 이롭게 한 수박’에 다름 아니었을까. 

지난 대선에서도 국민의힘이 근소한 표차로 이겨 ‘윤석열 정권’이 탄생하기는 했지만 일명 ‘태극기 부대’는 결코 보수정당 집권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 지배적 시각이다. 오히려 한국 정치를 퇴보시키고 정치의 환멸만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눈앞의 달콤한 효과에 취해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부정적 측면을 외면하다가는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는 교훈이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의 “군중은 자기 동력을 갖고 있다. 일단 불이 붙으면 통제가 안 된다. 그들을 세뇌해 써먹는 이들은 결국 그 군중에 잡아먹히게 된다”는 지적은 무섭고 섬뜩하지만 정확한 지적이다. 정당이 팬덤 정치에 휘둘리게 되면 상대에게 양보하는 순간 지지자들이 등을 돌리기 때문에 대화와 타협 대신 자신들의 입장만 대변하게 되고, 이는 결국 스스로에게 내리는 셀프 사망 선고나 다름없다. 더구나 극단의 지지층만 생각하다 보니 여야 협상마저 어려워져 작금의 현실처럼 개싸움이 사람싸움으로 변해 ‘너 죽고 나도 죽자’는, 모두가 죽는 정치가 된다. 

정당은 다양성이 존재하고 이견이 존중받을 때 민주정당으로 국민들 곁에 계속 남게 된다. 다른 이견이 무시되고, 쫓아내야 되는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정치가 내년 총선으로 올인하고 있다. 이기고 지는 정당이야 나오겠지만 이기려면 극단 지지층에 잡아먹히는 길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大記者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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