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매일신문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지방시대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강상헌의 하제별곡] 문일지십-然(연)의 마법(上)
상태바
[강상헌의 하제별곡] 문일지십-然(연)의 마법(上)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3.10.31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자연(自然)의 然자가 ‘불에 구운 개고기’라는데...

자연(自然)의 말뜻은 ‘스스로(저절로)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개 영어 네이처(nature)의 뜻으로 이해한다. 원래 뜻을 거의 잃은 말이다. 

19세기말 일본이 서구문명을 바삐 받아들이며 ‘네이처를 自然이란 말로 쓴다(번역한다).’고 정한 것이 이런 (언어)현상의 시초다.

‘그러할 연(然)’자는 문명의 새벽 갑골문 사람들의 생각부터 현대의 활용법에까지 마치 마술처럼 작용한다. 하나 들어 열 깨치는, 聞一知十의 공부에서 이 단어가 중요한 까닭이다. 

3천5백년쯤 전 동아시아 대륙의 중원을 흐르는 황하(黃河) 유역의 동이(東夷)겨레도 포함된 여러 족속들이 갑골문을 지을(그릴) 때 어떤 생각으로 然이란 글자를 만들었을까?

달 月(월)자로 흔히 착각하는 고기 ⺼(육·肉과 같은 글자), 개 犬(견), 불 灬(화·火와 同字)의 3개 단어(글자)가 합쳤다. 

한자 배울 때 “불에 구워먹는 개고기가 ‘그렇다’는 뜻이 된 까닭이 뭘까?”하는 질문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구체적 사물의 단어들이 모여 추상(抽象)의 한 단어가 된 경우다.

“개고기는 불에 구워 먹어야 맛나지, 그렇지?”와 같은 가상(假想)의 답변에서 ‘그렇지?’가 ‘그러하다’의 뜻으로 진화(進化)한 상황을 추측할 수 있겠다. 이 ‘학설’은 한자에 관한 학문인 문자학(文字學)에서 꽤 보편적인 얘기다. 

이 상황, 재미는 있지만 바로 정답 짚어내기는 쉽지 않겠다. ‘그러할’ 또는 ‘그러하다’는 (추상성 강한) 말의 뜻을 이해하기 쉽지 않아서다. 하여간, 불에 구운 개의 고기가 그럴 然의 뜻을 만들었다. 인문학적 ‘화학’이 빚은 조화다. 

요즘 인기 단어인 축제(祝祭)의 제(祭)자도 비슷한 사례다. 고기 육(⺼), ‘또’나 ‘다시’의 뜻으로도 익숙한 오른손 우(又), 보일 시(示)의 합체다. 고기를 손에 들어 (신에게) 보이는 것은 제사를 지내는 중요한 뜻이다. 

한자가 원래 그림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뜻을 품는 표의문자(表意文字)로 글자 하나하나가 독립된 단어다. 그림이 기호(글자)가 된 것이니 그 기호를 모아 다른 뜻을 가지는 다른 글자를 만들기 쉽다. 

然(연)이나 祭(제)도, 犬(견)이나 又(우)처럼 한 글자다. ‘하나를 알면 열을 깨친다’는, 문일지십이란 말의 원리를 상상할 수 있다. 한자(문자)의 구조가 만들어지는 원리이기도 하다.

우리 한글 ‘가나다’처럼 논리적 공식(公式)으로 이해되지는 않는다. 그 차이, 갑골문 시대 사람들의 모습과 생각을 짐작해보는 기회로 삼으면 좋겠다.    

강의 때 으레 이런 질문을 받았다. 개고기를 먹었다는 사실에 대한 불편함의 표현일 것이다. 허나 달리 해석할 방법이 있을까? 

사실 음식 역사를 다룬 동서양의 책들을 보면, 개고기 섭취가 소나 돼지의 고기처럼 서구(西歐)를 포함한 지구 전 지역에서 일반적이(었)다. 과거 식인(食人) 풍습도 별반 다르지 않았고, ‘나름의 이유’를 가졌다. 인류의 진화, 비교문화(사)의 관점을 염두에 두고 생각할 문제다.

自然처럼, ‘연’자를 붙여 만들 수 있는 글자(이미지)는 얼핏 떠올려도 수십 개다. 본연(本然) 완연(完然) 당연(當然) 필연(必然) 초연(超然) 우연(偶然) 등... 또 ‘남자연(然)’하여 유명인과 결혼하겠다던 여자의 경우처럼 然이 접미사(接尾辭)가 되어 여러 의미를 만들기도 한다. 

문일지십의 멋진 사례들이니, 어찌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논어)를 마다하랴?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