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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반본(返本)-체덕지(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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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반본(返本)-체덕지(中)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4.02.1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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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우리 몸에 흐르는 기(氣), 거센 바다처럼 용솟음치게 하라.

기가 차고, 기가 막히고, 기가 죽는다. 기를 펴려고 기를 쓴다. 기를 살려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일상 언어의 키워드인 기(氣)는 맨눈으로 관찰하거나 채집하기 어려워 마치 상상의 결과인 듯 여기기 쉽다. 허나 얼굴에서도 보이는 기색(氣色)은 부지불식간에 드러난다. 

기절(氣絶)은 죽음이거나 그 전조다. 기색(氣塞)이기도 하다. 기가 끊어지거나 막힌 것이다. 상상의 이미지가 아니라 엄연한 존재다. 氣는 피처럼 우리 몸을 돈다. 

잔잔히 생각해보자. 눈을 감으면 더 잘 보이겠다. 언어로 해석한 氣의 모습이다.

어릴 적 우리l처럼, 신이 나서 뛰노는 아이들을 상상한다. 기가 살아있는 모습이다. 맑은 공기 속에서 대지를 내달린다. 노는 것이 최고다. 건강 관련 (과학의) 수치 따위 접어두자. 그 골목과 논두렁, 시냇가는 기운으로 충만했다. 아름답다.

어쩌다 기성세대들은, 또 (교육을 위한다는) 제도는 우리의 후예들로부터 이 생존권적 기본권을 빼앗고는 ‘미래를 위해 어쩌고... 의대만이 살길이니 저쩌고...’하며 딴전 피우고 있는가? 

공부 바쁜데 언제 운동해? 이이들 기를 죽이고서 세상 영화(榮華)를 (우리만) 보겠다고? 이런 영탄(詠歎)조 표현이 적절한지 생각하기 전에 나를, 우리를 돌아보자. 본디로 되돌아가는, 반본(返本)이다. ‘처음처럼’은 술 취하자는 뜻 아니다. 우리처럼 그렇게 크는 것이 옳다.

지덕체(智德體)라고 좋은 말 셋 합쳐놓고 마음들이 급했다. 지식 쌓는(智 지) 공부가 1번이고, 다음이 (사람끼리) 어울려 사는 덕성(德性)일세. 셋 다 중요하지만 ‘효율의 원리’에 따라 몸(體 체)를 위한 배려는 여유와 시간이 남아돌 때 끝판에 하는 것이었다. 

氣는 피처럼 우리 몸을 돈다. 기가 사는 첫째는 몸을 활발히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 어울려야 이쁜 마음이 된다. 허나 ‘경쟁만이 살길’이라며 놀지 말라 윽박지른다. 좀 배웠다는 이들아, 이게 맞느냐. 우리가 지금 아이들을 저렇게 죽이고 있구나, 우리의 미래까지...

순서 바꿔 체덕지(體德智)로 가자. 판을 뒤집어야 아이들이 살고 그 (젊은) 부모들도 산다. 인구멸실(滅失) 예상 드라마의 BGM을 장송곡이나 진혼곡(鎭魂曲)으로 깔 수는 없지 않느냐. 

전통의 주역(周易), 점치는 책이나 주술 도구가 아니다. 조선 후기 우리 땅에서 태동한 정역(正易)은 주역과 함께 역사의 흐름을 보았다. 변화(變化) 즉 바꿀 易이다. 바뀌어야 산다. 못 바꿔서 한말(韓末)부터 (지금껏) 왜놈들 더러운 구박을 자청(自請)하지 않았던가.

‘지덕체’의 학교나 제도를 지우자. 눈을 뜨고 저 아이들을 보자. 역사하는 이들은 졸고 계신가? 철학은? 易은 용이(容易)하다처럼 ‘쉽다’는 뜻도 있다. ‘체덕지’로 바꾸는 것은 쉽다.

그러나 바꿔야 할 숙제가 거대했다. 개혁(改革) 정도로도 어림없다. 어진 선조들은 내다보았다. 처음으로의 반본, 천둥같은 개벽(開闢)이라야 겨레가 산다고, 이미 그때 가르쳤다. 

동학(東學)의 시대가 왔으나 머릿속 흐린 몇몇 기득권 세력의 칼자루를 내치지 못했다. 쬐꼬만 복주머니 하나라도 내 것 아니면, 삿된 것이면, 내쳐야 정신이 산다. 몸이 죽고 마음이 죽으면, 숙취와도 같은 얼얼한 맘씨가 氣를 대신한다. 어찌 대전환의 키를 맡기랴, 침몰이다.

네이버 열린연단의 최근 강연에서 수학자이며 교육전문가인 연세대 민경찬 명예교수가 지덕체(순서)의 폐해(弊害)를 바로보고 ‘체덕지의 지혜’를 바로 세우자고 주장했다. 겨레의 슬기와 기운이 바로 서는 징조인가, 설렌다.

우리는 인류(사)에 어떤 존재일까? 전쟁과 질병 등의 복합재앙의 시대를 바로보자. 기가 죽거나 비틀어지면 안 된다. 우선 (아이들) 몸 살려 기를 살리자. 겨레의 氣, 거기 있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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