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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청룡(靑龍)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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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청룡(靑龍)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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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1.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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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개’는 도그(dog)지만, ‘용’은 드래곤(dragon)이 아니다.

정월(正月)도 여물어간다. 음력 달력으로 곧 아이들이 특히 기쁜 설, 대보름까지는 겨레의 축제기간이다. 

베트남 파병 부대 이름이 청룡(靑龍)이었다. 축구 스타도 이청룡이다. 용은 친근하면서도 범접(犯接)이 어려운 이미지다. 오래, 호랑이만큼, 깊이 스며온 이미지다. 최고의 대결, 용호상박(龍虎相搏)은 즐거운 상상이다.

올 해 갑진년(甲辰年)는 용의 해, 특히 푸른 용의 해다. 여러 매체들이 새해 축하의 서두에 이 이미지를 띄운다. 푸른색은 천간(天干) 중의 甲에서, 용은 지지(地支)의 辰에서 왔다. 

특히 젊은 층을 겨냥한 놀이기구나 게임에 블루 드래곤(blue dragon)이란 이름이 많이 붙는다. 靑龍을 염두에 둔 이름일 터다. 

아니나 다를까, 새해 맞은 영문 발행 매체나 일반 신문방송 웹사이트의 외국어판에는 이런 번역(이어 오브 블루 드래곤·Year of Blue Dragon)이 차고 넘친다. 설 특집에도 그럴 것이다. 왜 아녀? 무슨 뜬금없는 소리? 말씀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운룡(雲龍)이라 했다. 화염 뿜으며 구름 속 거침없이 내달리다 여의주의 신비한 빛으로 천지(天地)와 기세(氣勢)를 겨루는 우리 (마음 속) 용의 모습이다. 청룡이니 더 우람하다. 

왕(王)도 깃발로 세우지 못한 이미지다. 다 윗길인 황제(皇帝)의 독차지였다. 우리 역사도 대한제국의 고종 이전엔 그랬다.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은 우리 민중 속 용의 모습이다. 

여의주(如意珠) 물지 않은 용은 상상할 수 없다. 우리가 흔히 龍의 번역어로 쓰는 드래곤은 여의주가 없다. 구름 속을 저렇게 날지도 않는다. 구미(歐美 서양) 설화(說話) 속 상상의 동물이다. 龍도 상상의 동물이어서 둘 다 동물원에 없다.

악귀(惡鬼)의 상징인 드래곤은 거친 여자의 이미지다. 공주를 납치해 동굴에 가뒀다가 백마(白馬) 탄 기사의 창에 무너지는 괴물이기도 하다. 서양인들은 동양(한국)에서 드래곤을 저렇게 멋지게 표현하는 것을 신기해한다. 어쩌다 용과 드래곤이 같은 대접을 받게 됐을까? 

바그너 오페라 ‘니벨룽엔의 반지’에서 ‘발퀴레’에 이은 ‘지크프리트’ 대목에 주인공의 칼에 찔려 스토리 중 갈등 해소의 역할을 하는 드래곤이 등장한다. 이 정도는 의젓한 드래곤이다. 

부러진 칼을 모루에 얹어 망치질 하는 장면, “노퉁, 노퉁...” 신(神)의 칼 노퉁을 벼리며 지크프리트는 비명 지르듯 노래한다. 망치소리가 불협화(不協和)로 끼어드는 특이한 음악에서 영웅적 기상의 바그너를 느낀다. 나중에 광기(狂氣)의 히틀러가 이 대목에 반하지 않았을까.

이 드래곤은, 동아시아 문화의 장중(莊重)한 형상(形像)인 龍과 전혀 다른 존재임에 특히 주의할 것. 龍은 ‘yong’ 또는 ‘ryong’이지 블루 드래곤에서처럼 ‘dragon’이 아니란 얘기다.

개(犬 견)는 도그(dog), 곰(熊 웅)은 베어(bear)다. 문화적으로도 그 생태적 명칭의 짝이 부합한다. 그러나 상상의 동물 용(龍)은 역시 상상의 동물인 드래곤과 다르다.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선(禪)의 화두도 함께 새겨보자.    

휴대전화 상표로도 익숙한 갤럭시(galaxy)는 은하수(銀河水)다. ‘은빛 하천의 물’이란 뜻 한자어다. 원래 미리내라고 불렀다. ‘미르’는 용의 우리(말) 이름이다. 미리내는 용을 천체(天體)에 투사한 용천(龍川)인 것이다. 거창하다. 말은 뜻밖의 여러 뜻을 품는다.

여의주 없는 드래곤은 용이 아니다. 푸른 용의 해, 이어 오브 청룡(Year of Cheong-ryong)이 맞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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