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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의료공백 속타는 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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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의료공백 속타는 환자들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4.03.2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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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지난달 20일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에 돌입한 이래 의사들과 정부의 대치국면은 악화일로다. 의대 정원을 내년부터 2000명 증원하겠다는 정부 방침을 두고 한치 양보 없는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전공의들이 단체로 수련병원을 떠난 이후 의대생들도 학교를 등지고 있고, 이제는 대학병원에서 직접 환자들을 살펴온 의대 교수들마저 집단 사직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맞선 정부는 의사면허 정지를 카드를 꺼내드는 한편, 의대생들에게도 단체 유급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의사단체 간부들을 상대로 한 경찰의 수사도 본격화했다. 도무지 해결 기미가 없는 상황 속에 중재자도 찾아지지 않는다.

보다 못한 일각에서는 국민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의 장을 마련하거나 아예 공론화위원회를 띄우자는 주장도 내놓지만 아무런 메아리가 없다.의료 현장을 떠나는 자기 파괴적 투쟁 말고는 달리 대항 수단이 없다. 의사가 모자란다고 하는 판에 스스로 활동 의사 숫자를 줄이고 있다. 이런 어깃장이 없다. 의약분업, 원격의료, 의대 증원 등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정책이 나올 때마다 파업으로 맞서온 사람들이다. 그 폐해가 수십 년간 누적돼 이제 국민도 진력이 나고 있다. 의사 부족 문제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10년 펴낸 ‘한국경제 60년사’에도 필수의료 부족과 의료서비스의 지역별 불균등 문제가 적시돼 있다. 다른 선진국과의 인구 10만 명당 의사 수를 비교하는 수치가 소상하게 나열돼 있다.

의대 교수와 전공의의 길드(동업조합)적 연대는 의사 집단의 카르텔적 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의대 교수들의 사직 결의를 ‘제자 사랑하는 순수의 발로’로 볼 순 없다. 이제 막 입학한 의대 신입생들의 수업 거부를 방치하는 스승들 아닌가. 학원 소요가 심했던 전두환 독재정권 치하의 강단도 이렇진 않았다. 모든 의사를 싸잡아 말할 순 없지만, 의료계에는 오랜 훈련과 직업적 경험을 통해 중세 길드식 생존법을 체화하고 전파하는 사람이 많다. 직역의 대체 불가성과 의료 시스템의 취약성을 능란하게 파고든다. 길드의 경쟁력은 정부 면허를 기반으로 한 배타적 독점력이었다. 이를 위해 도제 숫자를 통제하고 조합원 충원과 훈련에 대해 전권을 행사했다. 오늘날 의사단체들의 전형적 모습이다.

길드의 수습공은 도제라는 기술훈련 시스템에 따라 4~5년의 수련을 거쳐 숙련공이 되고 나중에 장인이 되는 길을 걸었다. 독일 보쉬 창업자 로베르트 보쉬, 오펠 창업자 아담 오펠이 그런 과정을 거쳐 자동차산업 기반을 닦았다. 이런 과정은 대학교-전공의-전문의로 이어지는 의사 양성 과정과 거의 일치한다. 유서 깊은 볼로냐, 파리, 옥스퍼드대가 대부분 학생조합이나 교수조합으로 출발한 것도 길드적 유산이다. 당시 대학의 석사나 박사가 ‘master’와 ‘doctor’로 명명되고, 제조 장인과 의학박사가 그 명칭을 따라간 것은 모두 하나의 궤적이다.

최근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의대 증원을 전제하되 2000명을 못 박지는 말고, 정치권과 국민까지 아우른 협의체에서 1년 안에 논의하자 제안했지만 양쪽 모두로부터 외면받았다. 정부는 더이상 늦출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고, 의사협회조차 '일방적 희망일 뿐'이라고 논의 가능성을 일축했다.피할 길 없는 도로의 양 끝에 선 의사와 정부가 위험을 무릅쓰고 서로를 향해 전력질주하는 이번 치킨게임은, 성경 속 솔로몬의 재판도 떠올리게 한다. 고대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은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하는 두 여인에게 판결을 내린다. 확실한 진실을 모르겠으니 아이를 둘로 갈라 나눠주라는 판결에 한 여인이 차라리 포기하겠다고 말하자 ‘이 여인이 진짜 어미다’라고 선언한다.

진짜와 가짜를 가리기 힘든 두 여인은 의사 집단과 정부의 모습이다. 극단적 상황을 예고하며 선택을 요구하는 건 파국으로 흐르는 시간이며, 여차하면 배가 갈릴 위기에 놓인 아이는 국민을 상징할 것이다. 각자 국민 건강을 위한다는 의사와 정부의 대립각 속에 아픈 국민들의 신음이 서서히 비명처럼 퍼진다.한국중증질환연합회가 최근 파악한 사례들을 보면 식도암 4기 환자는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거절당했고, 담도암에 걸린 환자는 병원의 퇴원 압박을 이기지 못해 요양병원으로 옮긴 뒤 숨을 거뒀다. 속이 타들어가는 항암치료 환자에게 치료 시기 연기가 통보되고, 급히 의사를 찾느라 병원을 전전하는‘응급실 뺑뺑이’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필수의료’가 절대적 가치로 논의되고 있다.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확대를 골자로 한 의료 개혁을 두고 젊은 전공의가 파업으로 맞서고 있고, 의대생들은 동맹 휴학을 결의하면서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된 갈등이 4월 10일 치러지는 제22대 총선과 맞물리면서 투표일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공의 파업의 주된 원인은 비과학적인 2000명 정원 확대, 의대 교육 질 저하 등이다. 의료계에서는 우리나라 의사 수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에 크게 못 미친다고 하지만, 의료 접근성이 세계 최상에 위치해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주장은 틀린 분석이다고 강조한다.

여론은 정부 편이다. 각종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의료대란의 책임에 대해 10명 중 6명이 ‘의료계’라고 답했고, 응답자의 76%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해 ‘긍정적이다’고 답했다. 의사들과 의대생들의 의대 정원 확대 반대는 자신들의 ‘밥그릇’이 줄 것을 우려하기 때문으로 보는 국민들이 많다. 의사들은 두 손에 부와 명예라는 떡을 쥐고 있다. 미국의 사상가 겸 문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의 말처럼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 의사는 그다음이다. 의사가 사회적 존경 대상에서 기득권 유지에 매몰된 일개 직업군으로 추락한다면 모두의 손해다. 전공의판 블랙리스트가 던진 배제와 낙인찍기 세태에 국민은 답답하다.

정부의 해결능력에 믿음이 가는 것도 아니다. 국민과 환자들은 하루빨리 훈훈한 소식이 들리길 갈망하고 있다. 명분보다는 실리를 따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명분에 얽매여 실리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의명분을 절대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명분보다 실리를 택하려면 치열한 담론과 고심에도 명분을 따를 수 없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대의명분을 경시하여 쉽게 이익을 추구하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대하는 의대생들의 집단행동이 한 달째 이어지고 있지만, 수업 거부와 동맹휴학 신청에 따른 학사 파행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시작된 가운데 병원을 찾은 환자들의 불안감과 공포가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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