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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가을은 봄을 준비하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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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가을은 봄을 준비하는 계절이다
  • 정선/ 최재혁기자
  • 승인 2024.10.31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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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가을이다. 예전 가을은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로 덮인 삭막한 가을의 일상을 보냈다. 올해는 달라도 많이 다른 것 같다. 일상을 되찾은 가을의 분위기는 언제 코로나 사태를 겪었는지를 잊은 듯하다. 사람들의 모습에도 자유로움이 넘치고 마스크를 벗어버린 환한 모습에서 우리가 평소 누리던 여느 가을의 모습을 되찾았다.잔뜩 움츠렸던 지난가을과 너무나 대조되는 주변 분위기다. 코로나로 험악한 분위기를 보였던 지나 간 가을의 사회상이 언제였나 싶다. 봄이 계절의 건너편에 있는 가을에게 편지를 쓴다. 봄이 벚꽃에 대해 쓰면 가을은 덕분에 처음으로 벚꽃을 알게 됐다는 답장을 보내며, ‘코스모스’라는 가을의 벚꽃이 있다고 소개한다.

봄이 다 쓴 편지를 여름에게 건네면 여름이 몇 개월 후 가을에게 전해주고, 가을은 다시 자신이 쓴 편지를 겨울에게 건네 봄에게 전한다. 동화책 ‘가을에게, 봄에게’에 나오는 이야기다. 서로에게 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리는 봄과 가을처럼, 닮은 점과 다른 점을 두루 발견하는 사이 계절은 깊어간다. 절기는 해가 만들어낸 1년간의 계절 변화를 스물네 개의 이름으로 붙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춘하추동이 들어간 입절기와 기절기 외에도 기온의 특징, 강수·응결 현상, 만물의 변화를 이름에 담았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풍경에 따라 움직이는 마음을 열두 달의 이름으로 정해 달력을 만들었다. 1월은 ‘눈에 나뭇가지가 뚝뚝 부러지는 달’, 7월은 ‘사슴이 뿔을 가는 달’, 10월은 ‘양식을 갈무리하는 달’ 등이다.

자연을 읽어낸 마음이 서로 닮았다는 게 반갑고도 신기하다.‘철들다’라는 말은 바로 이 절기, 제철을 알고 사는 것을 뜻한다. ‘철부지’는 지금이 어느 때인지를 알지 못하니 ‘어리석다’는 의미다. 꽃을 피우지 않은 나무에 열매가 맺히지 않는 것처럼, 결국 철이 든다는 건 지금이 어떤 계절인지를 알고 제때 해야 할 일을 하며 산다는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 때를 알아야 때를 놓치지 않는 법이다. 바야흐로 물드는 계절이다. 카렐 차페크는 가을을 ‘쇠락의 계절’이 아닌 ‘순환의 계절’이라고 했다. 자연의 겉모습만 보고 가을을 끝자락으로 여기지만 실은 한 해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낙엽이 진 자리엔 계절이 이어달리기를 하듯, 봄을 품은 잎눈이 숨어 있다.

가을은 닫힌 계절이 아닌 봄을 준비하는 계절일 수 있다. 계절이 있는 한 우리는 매번 기회를 얻는다. 우리 삶을 새로고침해줄, 다시 돌아오는 계절이 있어 다행이다. 이 아름다운 가을을 맞았는데도 정치권만큼은 악을 쓰고 핏대를 올리며 난장판이다. 도대체 이들은 왜 국민의 생각과 엇박자를 내며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대립과 갈등, 투쟁에만 혈안이 되고 있는지 참으로 의아하다. 늘 상습적으로 정치투쟁만 일삼고 있으니 이를 보는 국민은 그저 한심할 뿐이다. 가을이 왔는데도 이들은 마치 한 겨울 엄동설한에 머무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내년 봄은 사악한 기운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밝고 희망찬 시기를 맞아야 한다. 나이를 한 해 한 해 더하다 보니 가을은 풍요와 결실의 계절로 기쁨과 충만보다는 오히려 외로움 낭만 사색의 계절 쪽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는 쓸쓸함 공허함 이런 유의 감정이 더 지배하게 되는 듯하다.

단풍,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한창 푸르를 때는 늘 시퍼럴 줄 알았겠지만 가을바람 소슬하니 너도 옷을 갈아입었구나! 붉은 옷 속 가슴에는 아직 푸른 마음이 미련으로 남아 있을 테지…. 나도 너처럼 늘 청춘 일줄 알았는데 나도 몰래 나를 데려간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라는 영탄조의 시였다. 어쩌면 가을은 이처럼 화려한 단풍 속에서도 누구나 세월을 비껴갈 수 없으니 가을은 떨켜의 계절이다. 그동안 소중하다고 여기며 품고 살았던 것이 진정 나를 위한 것이었던가. 그 무엇도 내려놓고 살지 못했던 미련한 삶이었다.

남은 인생의 배낭에 무엇을 담고, 무엇을 버릴지 가을 단상 앞에서 상념에 잠긴다. 나무가 겨울이 오기 전에 떨켜를 만들어 잎을 떨어뜨리는 것은 또다시 찾아올 봄을 기다리기 위해서다. 내 삶의 여정에서 또 다른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하는 시기이다. 그 자리에 내 삶의 새로운 떨켜를 만들어 볼 일이다. 나무는 떨켜를 만들지 않으면 다시 돌아올 봄을 맞이할 수 없다. 인생 또한 그러하리라. 내 안에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고 더 소중한 그 무엇을 찾기 위해서라도. 생의 마지막 날까지 인생의 정원에 꽃을 피우기 위해서라도, 떨켜처럼 덜어내는 삶을 살리라.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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