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철이 되면 주부들의 마음은 분주하다. 월동준비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김장이기 때문이다. 이때가 되면 지인들과 묻고 답하는 안부가 “김장은 했어?”이다. 아마도 대한민국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인사일 것이다. “추워야 제맛이 난다”며 김장할 때가 됐는데도 날씨가 푸근해 영 맛이 안 난다며 걱정을 하기도 한다.
지역에서는 김장 축제로 북새통이다. 전국 어디나 같은 풍경일 듯하다. 지방자치단체 및 농협 등이 주관하여 김장 시장을 연다. 큰 마당에 산더미처럼 배추와 무가 쌓이고, 고춧가루, 생강, 갓, 새우젓, 멸치액젓, 소금 등 양념을 파는 천막들도 흥겨움을 더한다.
지역시민단체들도 김장 나눔 행사로 온정을 나누느라 여념 없다. 양로원이나 고아원 등 소외계층에도 정성이 담긴 김치가 보내지며 나눔은 행복 바이러스가 되어 넓게 멀리 퍼진다.
김치는 우리 민족의 식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음식이다. 부모는 출가한 자식에게 김치를 담가 나눠주며 행복해한다. 김치냉장고를 다 채워놓고 나면 마음은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이다. 반면 김치냉장고가 비어 있으면 곡간에 양식이 떨어진 것처럼 허전함을 느낀다. 요즘은 김치를 사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래도 김치를 사 먹는데 익숙하지 않은 주부도 많다.
김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발효식품이며 여러 가지 채소로 만들어져 저열량 식품으로 평가된다. 식유섬유소 함량이 많아 장의 활동을 촉진해 변비와 대장암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비타민 C·베타카로틴·비타민 B군이 많이 들어 있어 비타민과 무기질의 좋은 공급원이다. 칼슘·철·인 등도 풍부해 뼈 건강과 빈혈, 감기 예방에도 좋다. 유산균도 듬뿍 들어 있어 김치만 먹으면 요쿠르트는 마시지 않아도 된다.
올해도 인정 많은 사돈댁 덕분에 김장을 무사히 마쳤다. 지난여름 무더위 속에 바깥사돈이 텃밭에 김장의 주재료인 배추와 무를 심는다기에 의아해했다. 과연 잘 자랄지, 누가 관리할지, 김장을 할 수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배추와 무가 제법 잘 자라 넉넉하게 뽑아 김장용으로 손색이 없었다.
김장 이틀 전 금요일에는 양 가족이 모두가 모여 배추를 뽑아 다듬어 절여 놓고 무채를 썰어 준비했다. 배추절임은 약 5시간이 지나면 아래위의 배추위치를 바꿔 뒤집어 주고, 5시간 정도 더 절여 준다. 사과, 무, 대파 등으로 채수를 내고, 마늘, 생강, 배도 갈아서 각각 다른 그릇에 담아 놓았다.
또 찹쌀로 풀도 쒀 놓고 고춧가루와 갓, 새우젓, 멸치액젓, 까나리 액젓, 멸치진젓 등 양념을 챙겼다. 그다음 고무통에 무채와 양념을 넣고 여러 번 버무려 양념소를 만들었다. 이마에 땀이 나도록 버무리니 맛있는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절인 배추를 흐르는 물에 네 번 정도 헹궈 소금기를 빼고 물기를 탈수하기 위해 채반에 올려놓았다. 김장 중에 제일 힘든 일이 배추 절이고 알맞은 간으로 헹구는 일이다. 넓은 마당에서 배추에 양념소를 집어넣을 자리를 만들고, 온 가족이 모여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배추에 양념소를 넣어가며 싸 간다.
배추 겉면에 양념소를 쓱 바르고, 배추 줄기 쪽에 양념소를 켜켜이 채워주고 겉잎을 이용해서 양념이 흘러나오지 않도록 돌려 싸 마무리한다. 다 싼 김치를 김치통에 켜켜이 담는다. 이때 배추김치 사이에 큼직하게 자른 무를 중간중간에 넣어준다. 그리고 제일 위에 배추 겉잎으로 덮어 한 통을 마무리한다.
마치 자동화공장처럼 잘 돌아간다. 나는 뒤에서 절인 배추에 밑부분을 다시 다듬어 공급했다. 배추를 다 싸고 남은 양념소에 굴을 넣고 배추겉절이 하였다. 그리고 크고 작은 고무통과 채반, 소쿠리 등 그릇들을 설거지하고 마당도 깨끗이 비질하고 나니 비가 내렸다.
올해는 무, 배추 등 주재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김장 비용이 역대 최대치로 올랐다. 지난여름 내내 폭염과 폭우 등 이상기후로 작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물가정보(11월 18일)에 따르면 올해 전통시장에서 4인 가족을 위한 김장 재료를 구매하려면 총 33만1천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30만1천원이었던 지난해 대비 10% 올랐다.
물가가 올랐다고 밥만큼 소중한 김치를 안 먹고 살 수는 없다. 온 가족이 힘 합쳐 담근 올해 김장 김치가 맛있게 익기만 바랄 뿐이다. 어려운 살림살이에 반찬 걱정이라도 하나 덜어주면 그 또한 감사한 일이다. 한해 겨우살이 준비를 잘한 것 같아 마음이 행복하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문제열 국제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