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 시골에서는 농한기가 되면 동네 어르신들이 우리 집 큰 구들방에 모여 따뜻한 온기를 나누며 맛있는 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고, 정겨운 담소를 나누던 기억이 있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 시절 사람들의 모임에는 언제나 담배 연기가 가득했고,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 없이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받아들여졌다. 버스와 기차에는 좌석 뒷면에 재떨이가 부착되어 있었고, 사무실 책상 위에도 재떨이가 놓여 있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심지어 처음 만난 사람과의 어색함을 풀기 위해 담배를 권하는 문화도 존재했다.
하지만 오늘날 흡연 문화는 크게 변화했다. 길거리에서 공공연하게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보기 어려워졌고, 흡연자들은 쾌쾌한 냄새가 배어 있는 흡연실에서 조심스럽게 담배를 피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변화는 담배가 흡연자뿐만 아니라 비흡연자의 건강에도 심각한 해를 끼친다는 사실이 사회적 상식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지난 2월 26일 질병관리청 발표에 따르면, 2023년 전국 흡연율은 18.9%로 전년 대비 1.4% 감소했다. 2019년 23.9%였던 흡연율이 2020년 23.4%, 2021년 22.8%, 2022년 21.1%, 2023년 20.3%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점은 국민들이 담배의 폐해를 점점 더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많은 국민이 잘 알지 못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이 지난 2014년부터 담배회사를 상대로 10년 넘게 소송을 진행해 오고 있다는 점이다.
공단은 30년 이상 흡연 후 폐암 및 후두암 진단을 받은 환자 3,465명에게 지급한 건강보험 급여비 약 533억 원을 손해배상 청구액으로 설정하고, 2014년 4월 KT&G,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현 BAT) 등 주요 담배 제조사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6년간의 긴 법정 공방 끝에 2020년 11월 법원은 공단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법원은 흡연 외의 다른 요인으로도 암이 발병할 가능성이 있으며, 담배회사들이 담배의 중독성을 축소하거나 은폐하지 않았다는 점을 기각 사유로 들었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국민들이 많을 것이다.
관련 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폐암 중 소세포암은 97.5%, 편평세포암은 96.4%, 후두암은 85.3%가 흡연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한다. 또한 질병관리청 발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흡연으로 인한 연간 사망자는 무려 58,036명에 달하며, 이는 하루 평균 159명이 목숨을 잃는 수치다.
이에 공단은 담배 제조·수입·판매 기업에 흡연 폐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고, 건강보험 재정 손실을 막기 위해 학계에서 인과관계가 가장 높다고 인정된 폐암(소세포암, 편평세포암)과 후두암(편평세포암) 등 3대 암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비 손해배상을 다시 청구했다.
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흡연으로 인해 지출된 건강보험 진료비는 3조 8,589억 원으로 최근 5년간 연평균 4.6% 증가했다. 이는 공단이 소송을 제기한 2014년 당시(2011년 기준) 1조 7천억 원에서 10년 만에 약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이처럼 증가하는 진료비는 결국 국민의 보험료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공단이 1심에서 패소한 이유 중 하나는 국민들의 관심 부족도 작용했을 것이다.
현재 공단은 1심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를 제기한 상태이며, 보건의료 및 법학계 전문가들과 협업하여 법적 논리를 보강하고 있다. 오는 4월 24일 열리는 12차 변론을 마지막으로 올해 안에 최종 판결이 내려질 예정이다.
이 소송이 성공한다면 담배회사에 흡연 피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금연 문화 확산과 건강보험 재정 안정에도 기여할 것이다. 따라서 국민들이 이번 소송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응원하여, 재판부가 보다 객관적이고 정의로운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더욱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