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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75] 요소수 하나에도 휘청거리는 슬픈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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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75] 요소수 하나에도 휘청거리는 슬픈 계절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21.11.10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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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일본과 이번 중국의 요소수 수출 금지는 성격이 다르다. 하지만 일본의 수출규제는 경제문제가 전쟁을 대신해서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교훈이었다. 정부는 그러한 교훈을 벌써 잊어버린 것이다.

대한민국이 이처럼 취약한 나라였던가. 요소수 하나에 나라 전체가 마비될 위기에 처했다. 소재가 제때 공급되지 않아 공장에선 생산라인이 멈추고, 주유소마다 대형 트럭들이 목마른 짐승처럼 줄을 서고 있다. 1만원대이던 10리터 소매용 요소수가 10만원대로 10배 이상 폭등하고, 정부가 나서 사재기를 단속할 만큼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다.

국내 요소수 최대 생산업체인 롯데정밀화학은 현재 재고분으로 이달 말까지 요소수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달 말이 지나면 대한민국 산업이 멈춰 설 수 있다는 의미다. 현재도 요소 부족으로 일부 공장 가동은 중단한 상태다.

요소수는 SCR(배출가스 저감장치)가 장착된 디젤 차량에 연료와 별도로 주입하는 촉매제로 해당 차량은 요소수가 없으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2016년 이후 제작·수입된 경유 차량에는 의무적으로 SCR이 장착됐다.

요소수가 바닥나면 국내 화물차 운행이 중단된다. 국내 경유 화물차 330만대 중 60%인 200만대에 SCR이 장착돼 있다. 200만대가 멈춰서면 공장 생산, 출하가 불가능해지고 수출공장들은 제품을 항만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태도 발생한다. 레미콘 차량 운행이 불가능해지며 건설 현장도 타격을 받는다.

버스 운행이 멈추고 승용차 운행 또한 어려워져 일상생활이 함께 멈춰 설 수도 있다. 뿐만아니다. 긴급상황에서 출동해야 하는 구급차, 소방차 등도 멈출 수 있다. 청소 차량은 쓰레기를 수거하지 못하면서 곳곳에 쓰레기 대란 가능성도 제기된다. 요소비료가 필요한 내년 농사도 차질을 빚을 테고, 농작물 값은 치솟을 수도 있다. 한 마디로 재앙이다.

요소수 위기는 지난달 중순 중국이 석탄 부족으로 요소 수출을 강화하며 시작 됐지만 중국발 석탄부족 여파를 세심히 살피지 못한 정부의 안일한 대처가 낳은 재앙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정부는 사전에 사태를 예견하고 대처하기보다는 사태가 현실화 된 뒤에야 호들갑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호주나 베트남 등에서 일부 물량을 수입하기로 했지만 수요를 충당하기엔 역부족이다. 뾰족한 수가 없다. 중국이 수출 금지를 완화하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악몽이 현실이 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중국은 ‘아무것도 아닌’ 요소수로 한국을 길들이려 하는 유혹을 느낄 수 있다. 중국은 요소수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다리기 하고 있는 한국에 보내는 경고 메시지’로 활용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기우에 불과하기만을 바라지만, 김치도 자기 네 것이라고 우기는데 중국으로서는 얼마나 호기가 되겠는가.

2년 전 일본의 교훈을 정부는 벌써 잊어버린 것인가. 당시 일본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반도체 제조 등에 필요한 핵심 소재 등의 수출규제를 단행, 우리를 곤혹스럽게 했다.

물론 일본과 이번 중국의 요소수 수출 금지는 성격이 다르다. 하지만 일본의 수출규제는 경제문제가 전쟁을 대신해서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교훈이었다. 정부는 그러한 교훈을 벌써 잊어버린 것이다.

정부가 2년 전 일본의 사례를 뼈아프게 기억하고 있었다면 산업 전반에 대한 취약성을 미리 파악하고 대처했어야 한다. 그런 게 정부가 할 일이다. ‘모든 분야를 미리 대처하기가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백번 양보하더라도 주변국의 현안을 면밀히 파악했다면 오늘 같은 이러한 허둥지둥 모습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이 호주와의 갈등으로 석탄 수입을 중단했고, 이는 결국 석탄 부족으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점은 상식 중에서도 기초 상식이다. 그다음의 ‘석탄 부족으로 요소 생산이 한계에 달할 수 있다. 그러면 요소와 관련된 국내 산업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하는 예상 문제 도출과 해답은 정부의 몫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국무회의에서 “특정 국가의 수입의존도가 과도하게 높은 품목에 대해서는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하고 면밀한 관리체계를 구축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2년 전 일본의 수출규제 때도 유사한 지시가 있었다. 대통령의 똑같은 지시가 반복되는 나라는 국민을 불행하게 한다.

한국은 요소의 97%를 중국으로부터 수입한다. 중국이 수출을 막으면서 국내에 들어오는 양도 대폭 줄었고 재고분까지 바닥난 상황이다.

대통령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최대 수입국인 중국에서 요소 수출을 풀어주지 않으면 요소수 사태는 국가와 국민의 삶에 재앙으로 닥치게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중국만을 쳐다봐야 한다. 감동을 주지 못한 여야 대통령 선거 후보자 선출에 이어 슬픈 계절이 계속되고 있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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