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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76] 그의 죽음이 슬픈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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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76] 그의 죽음이 슬픈 이유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21.11.24 1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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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끝내 무거운 업보를 짊어지고 가는 한 인간의 삶이 슬프고 눈물이 날 지경이다. 전두환, 역사의 죄인으로 영원토록 지워지지 않을 그 이름 석자에 남겨질 가여움이다.

사람이 사람의 죽음 앞에서 옷깃을 여미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의 죽음이 주는 슬픔은 가없다. 반란 수괴로 불렸고, 일부에서는 학살자라고도 불렸던 그의 죽음이 가슴 아프다. 끝내 무거운 업보를 짊어지고 가는 한 인간의 삶이 슬프고 눈물이 날 지경이다. 전두환, 역사의 죄인으로 영원토록 지워지지 않을 그 이름 석자에 남겨질 가여움이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한때 대통령이라 불렸던 전두환씨가 찬비가 내리던 지난 23일 세상을 떠났다. 그가 떠난 이 날은 대통령이라는 권좌에서 내려와 백담사로 귀향 아닌 귀향길을 떠나던 1988년 11월 23일과 같은 날이다. 우연이라면 더없이 슬픈 우연이다. 그는 33년 전 오늘,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의 비리에 대해 사죄하고 부인 이순자씨와 함께 연희동 집을 뒤로하고 멀고도 추운 백담사로 향했다.

그는 집을 떠나면서 재임 시절 쓰고 남았다는 정치자금 139억 원과 개인 자산 23억 원 등 전 재산을 국가에 헌납한다고 했다. 당시 그는 백담사로 떠난 지 2년 1개월이 지나서 다시 자택으로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났다.

그는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수많은 양민을 학살했지만 한 번도 참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죽음이 슬픈 것은 참회할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린 한 인간의 가여움이다.

전두환, 참회는커녕 사과나 반성도 없이 그렇게 가버렸다. 12·12 군사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등 내란죄 및 반란죄 수괴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돼 법적 책임이 공식 인정됐을 때도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5·18)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다. 그러니까 계엄군이 진압하지 않을 수 없지 않나”라며 학살을 정당화했다.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발포 명령을 내렸다는 점을 부인했다.

12·12 쿠데타를 함께 일으킨 노태우씨가 생전에 가족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사과한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달라 더욱 슬프다.

그는 회고록에서 고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로 표현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해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1심에 불복해 오는 29일 항소심 결심공판을 앞두고 있었다.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는 조비오 신부가 아니라 거울 앞에 섰을 때 그 자신에게 했어야 할 말이다.

그는 2000억 원이 넘는 추징금을 선고 받고도 자신의 전 재산이 ‘29만 원 뿐이다’며 추징금 징수를 거부, ‘29만 원’의 어록 아닌 어록을 남기기도 했다.

전 씨의 죽음에 대해 5·18기념재단과 5월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전두환은 지연된 재판으로 생전에 역사적 심판을 받지 못하고 죄인으로 죽었다”며 “광주시민들에게 끝내 사죄하지 않고 사망한 것은 무책임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생전의 심판이 두려운 그는 사후 심판을 남겨 놓고 반성 없이 떠났다. 작은 미물도 죽음 앞에서는 자신을 돌아보는 법인데 그는 그마저 거부, 역사의 죄인으로 남기를 자처했다. 그가 남긴 역사의 상처는 이제 광주시민들과 국민들의 몫으로 남겨졌다.

역사는 그의 죽음이 처연한 교훈으로 삼아 경계하게 될 것이다.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만 그를 닮은 권력의 탐욕자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권력의 속성이다. 억겁의 세월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을 그의 생전 업보가 가엾고 슬프지만 그는 역사의 훌륭한 반면교사로 남을 것이다. 악행도 교훈이 되어야 한다. 권력을 탐하는 자, 역사를 두려워하라는 교훈이다.

우리는 두고두고 전두환이라는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생전에 어떻게 양민을 학살하고 헌정을 유린했는지를 잊어서는 안된다. 그가 끝내 한마디 반성도 없었던 것처럼 한 푼의 동정도 없이. 그를 동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의 죽음 앞에서 슬픈 것이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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