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교육의 실현
복식부기의 출현은 1494년 이탈리아에서 루카 빠찌올리가 최초로 정리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보다 앞서 이와 유사한 장부기록 방법인 송도사개치부법이 개성상인들에 의해 정리되었다. 어떤 기록에 따르면 지오바니 디 빈치 데 메디치(Giovanni di Bicci de' Medici)가 이 방법을 14세기에 메디치 은행에 먼저 소개했다고도 한다.
복식부기는 기업의 자산과 자본의 증감 및 변화 과정과 그 결과를 계정과목을 통하여 대변과 차변으로 구분하고 이중 기록・계산이 되도록 하는 부기형식을 말한다. 거래의 이중성 또는 대칭관계를 전제로 하고 한 거래를 계정기입법칙에 의거하여 대차양변에 동시에 기입함으로써 대차변의 각 합계가 일치되어 대차평균의 원리가 성립되어 자기통제기능 또는 자동검증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부기의 최종결과는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로 나타난다. 이런 복식부기의 기능은 우리나라에서 송도상인 이전부터 발달하였다고 추정되며 이러한 거래 방식의 존재는 고대 한반도의 상업적 활동이 활발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고대의 한반도는 다민족 연맹체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며 유목민의 목축업과 농업의 물류가 활발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고려 때 개경에는 송상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상인들이 왕래하였다. 개경에 이르는 예성강 입구에 벽란도가 자리하고 있어 국제 교역항으로서의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송을 비롯한 외국과 활발한 교류를 하여 아라비아상인을 통해 고려의 국명이 서양에 알려져 "Corea"라는 호칭을 얻기에 이른다. 이 시대에 이탈리아 메디치가분에서 복식부기를 활용했다는 기록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추정할 수도 있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 시대에 수학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적혀있다. 그러나 그 이전인 고구려, 백제, 신라 시대부터 이미 수학이 발달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땅을 측량하는 것으로 인하여 수학이 발달했던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성을 쌓고, 일식과 월식을 예언하면서 수학이 발달한 것이다. 당시 성을 쌓는 기술자들은 땅을 파는데 굳은 흙과 굳지 않은 흙의 부피를 계산할 수 있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고대의 어느 문명에서나 이미 알고 있던 것이었다. 도량형의 기준을 정립하는 것은 동양의 고대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였다. 도량형은 길이나 무게 심지어 소리의 음의 기준을 말하고 있는데 일정한 길이의 나무통 속에 특정한 작은 알갱이를 집어놓고 기준이 되는 나무통의 울림이 기본음을 만들고 그 속에 채워진 나무통의 길이가 기준 길이가 되며, 그 안에 담겨있는 알갱이의 무게가 기준 무게가 되는 것이다. 이는 제천의식의 중요한 의식의 하나였으며 고대음악과 상업의 발달을 추론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또한 천문학이 발달하였는데 이는 조선시대까지 영향을 주었다. 세종대왕은 마방진 문제를 풀기도 하였고 집현전 교리들에게도 수학을 배우게 한다. 정인지가 중국의 산학계몽이란 책에 대하여 강의를 하기도 하였다. 세종대왕 시대 이후에 우리나라 수학은 중국의 수학을 흡수하고 발전시키며 독자적으로 수학이 발전하기에 이른다. 장영실이 혼천의를 만들어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였다는 것은 조선의 수학의 깊이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 속에서 인간의 관계는 재화의 이동과 함께한다. 고리대업의 역사가 성경에서도 나오듯 우리의 경우도 역사기록에서 고구려 시대 이전까지 올라간다. 이러한 화폐경제의 발달은 국가 재정과 개인 간의 거래를 기입하는 방식이 필요했다, 회계의 발전은 인간이 살아가는 기본적인 삶의 수단이 되어온 것이다. 중국에서는 기업의 대표를 총경리라 칭한다. 이러한 것이 의미하는 바가 있다. 회계를 알지 못하면 기업의 대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공정한 회계 관리는 신용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꽌시’의 기본이 회계가 되는 것도 당연한 것이었다. 중국은 일찍이 상업을 고도화시켰고 금융이 발달하였다. 파트로네스(후원자)와 클리엔테스(피후원자)로 대변되는 ‘클리엔텔라’로 불리우는 고대 로마의 인맥관계는 중국의 상호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훗날 ‘클라이언트’란 말이 의뢰인, 고객, 수혜자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고 우리나라에서 천년 이상 권력을 유지해온 영남의 정서도 이러한 맥락에서 연결될 수 있다. 카이사르는 파트로네스를 통해 1억 데나리온, 지금으로 계산하면 약 1,000억 원의 빚을 지고 갈리아 원정을 주도한 이유가 되었고 루비콘 강을 건너기 전 카이사르가 가장 신뢰하고 있던 보좌관 라비에누스가 그를 배신하고 카이사르 곁을 떠났다. 라비에누스는 정치적 신조 때문에 카이사르를 버리고 폼페이우스를 택한 것이 아니라 폼페이우스와의 클리엔텔라 때문이었다.
회계에 대한 이해는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또한 사회의 선순환 경제 구조와도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인간관계를 우선한다면 돈을 빌려주어서도 안 되고 동업을 해서는 더욱 더 안 된다는 생각이 옳은 것이란 믿음을 갖고 있다. 상업이 발달하고 이를 기반으로 인간관계가 형성되었던 문화권의 경우는 한 사람이 독립적으로 사업을 하는 경우 보다 여러 명이 동업하고 이에 맞는 관습적 규율이 만들어진다. 그러한 관습적인 규율의 핵심은 신용이다. 현대의 중국이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금융체계가 완벽히 작동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급속한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이유도 이러한 사회금융이 가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사업을 시작하는 개인에 있어 자본의 한계가 분명한 것이고 여러 명이 함께하는 사업은 회계의 투명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사회에서 회계의 투명성이 문화로서 확고히 한다는 것은 사회 신용을 촉진시키고 자금의 유통이 원활해지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투명한 사회는 투명한 회계에서 시작된다. 국회의 예·결산, 정부의 국가재정에서부터 기관과 공기업에 이르는 모든 활동은 회계의 투명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예산의 편성과 지출, 결산은 요식행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회 전반에 우리의 이러한 불감증이 만연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각하여야 한다. 최근 정의연의 국가보조금 부정수급과 회계부정 사건은 남의 일만은 아니다. 단순한 친목회나 동창회에서 조차 이러한 폐단이 쉽게 일어난다는 사실은 우리의 도덕적 불감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컴퓨터의 기능이 발전하고 엑셀과 같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져 단순한 계산을 쉽게 처리하는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모든 것이 자동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법률적 지식으로 충분하다고 하지만 국가재정을 다루어 예·결산을 심의하는 국회의원이 회계를 모른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그것은 지방의회 의원도 마찬가지다. 회계지식이 없이 기업을 운영한다는 것이나 공기업에 임원이 되어 경영에 참여한다는 것 또한 이치에 맞지 않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당신이 하나의 조직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회계를 아느냐는 질문을 하면 누구나가 회계를 알고 있다고 답한다는 사실이다. 사칙연산을 할 줄 알고 자신의 써야 하는 자금의 규모와 그것을 확보하는 방법, 또는 사업이익의 규모 등의 단순한 계산만으로 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회계가 왜 중요한지에 대한 이해를 하려하지 않는다. 그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고 고용인을 시키면 되는 단순기능이라 생각한다. 사업의 결과인 대차대조표나 손익계산서를 보고 사업의 운영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석사나 박사가 거의 없다는 사실도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하물며 방대한 조직의 예상편성표나 결산서를 보고 종합적으로 이해한다는 사실에 대한 필요성도 갖지 못한다.
회계투명성은 공동에 의한 창업환경이 만들어지고 특히 청년창업이 활발해지는 요소가 된다. 사실상 자본주의 사회의 기업의 형태는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주식회사의 존재는 이를 제도화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시대의 파트로네스(후원자)는 투자의 형태로 공식화되고 계약관계로 발전되었다. 핵심은 투명한 기업 경영에 있다. 사회의 회계투명성은 기업의 투명한 경영이 환경적으로 조성되는 효과를 갖는 것이다. 이는 학교교육 등 사회공정성을 위한 국민 회계교육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학교 교육과정에서 회계를 중심으로 한 실질적인 경제교육이 이루어져야 된다. 어린 시절부터 실생활의 회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살아있는 교육이 교육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실용주의적 교육을 실현하는 교육 전반에 걸친 페러다임의 전환이 된다. 우리의 전통적 사회는 산학을 중요시 하였고 이러한 전통은 최근까지도 지속되어 왔었다. 사람이 어울리는 사회 속에서 회계의 투명성과 이에 대한 이해가 도덕적 기준이 되었다. 조선의 임금이 신하로부터 산학을 배워 익힌 역사는 이에 대한 기술적 습득이 현대까지 이어져 바로 앞 세대가 적어놓은 흔한 수기장부 속에서도 그 정신이 숨어있음을 알 수 있다. 산업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계층화가 이루어지면서 회계는 노동자의 역할이 되었고 사회 전반에 걸친 회계투명성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이제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미래사회는 사회공정을 위한 회계투명성이 사회 전반에 보편적 가치로 자리할 수 있어야 한다.
[전국매일신문] 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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