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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익의 시선] 한국 언론, 아시아 중심 허브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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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익의 시선] 한국 언론, 아시아 중심 허브 도약
  • 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 승인 2022.03.0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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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세계 선도국가가 되기 위한 조건, 인류의 공존

이제 한국 언론은 세계로 그 시각을 돌려야 한다. 언론기능이 갖는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변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언론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실 그대로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에 있다.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이루기 위한 것도 아니며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역할을 부여받은 것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객관적인 시각과 냉정함으로 사실을 알리는 역할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함을 요구받는 것이다.

우리의 언론은 국내의 정치문제에 대하여 지나칠 만큼 편파적이다. 사건사고에 대한 보도조차 기자의 감정이 적나라하게 표출되어 있다. 기사의 제목 역시 대중에게 자극적일 수 있는 방식을 택한다. 마치 광고 선전을 위한 마케팅을 하고자 하는 의도와 다르지 않다. 이는 모든 종류의 국가에서 언론이 자본과 정치권력의 영향 아래에 놓여있는 한계를 극복하기가 쉬운 일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인류는 언론의 자유를 궁극의 가치로 내세우며 이러한 정치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여왔음은 사실이다.

언론의 자유는 의사 표현의 자유,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자유, 사실을 전달할 수 있는 보도의 자유, 그리고 매스미디어를 이용하여 자신을 알릴 권리 등을 내용으로 한다. J. 밀턴의 〈아레오파지티카 Areopagitica〉과 J. S. 밀의 〈자유론 On Liberty〉에서 이러한 자유가 진리 발견 및 전파에 필수적임을 역설했고 민주적 통합의 기능을 말하였다. 이를 통해 정치적 의사 결정에 국민을 참여하게 함으로써 안정과 변화 사이의 균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는 15세기 중엽의 활판 인쇄술의 발명 이후 근대국가의 성립·발전과정에서 시작되었다. 정치권력의 억압에 대한 시민적 저항의 결과이고 이후 서서히 실현되어 성립된 역사적 결과이다. 당시 정보의 대량 복제와 수용자의 양적인 확대를 가능케 한 새로운 정보수단의 보급은 절대주의적 정치권력에 크게 위협이 되었다. 정보수단을 장악하기 위해 자기에게 호의적인 것만을 인쇄하도록 하며 심한 검열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시민계급의 세력이 점차로 강해져 절대주의적 지배 권력의 양보를 얻어내기에 이른다.

산업혁명 이후의 인쇄기술이나 교통·통신기관의 발달·교육의 보급 등에 의해 저렴하고 발행 부수가 많은 대중 신문이 출현했다. 그 거대한 산업사회에서의 성장과정은 매스 미디어가 출현하며 집중되고 독점화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주로 시민계급이 향유한 언론의 자유는 매스미디어가 이어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옐로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의 경향을 띤 매스 미디어의 행동은 사회적 비판을 일으켰다. 정치권력의 억압에서 해방된 언론의 자유가 새로운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러한 사태에 대한 반성으로서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개념이 등장하였다.

옐로 저널리즘 현상은 지금도 자본주의 언론의 대표적인 성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조지프 퓰리처는 1883년에 뉴욕의 〈월드〉지를 인수하여 화려하고 선정적인 기사와 대대적인 선전을 통해 미국 최고의 발행부수를 확보했다. 1895년 캘리포니아 광산재벌의 아들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뉴욕 시로 옮겨와 경쟁지인 〈저널〉지를 인수하면서 퓰리처의 아성에 도전했다. 이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이그재미너 Examiner〉지를 대단히 성공시킨 경력이 있었던 허스트는 선정주의와 홍보, 일요특집판 등을 이용하여 경쟁지들을 물리쳐 뉴욕 시에서도 같은 업적을 이룩하고자 했다. 이러한 두 신문간의 경쟁을 '옐로 저널리즘'이라고 지칭되었고 옐로 저널리즘 시대의 몇 가지 기법은 지속적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왔다. 이렇듯 언론재벌의 출현과 정치권력과의 야합은 가면을 쓴 현대 언론의 본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다.

한편 해마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국가에 따른 언론의 자유의 순위를 매긴다. 세계 언론 자유지수 목록은 국경 없는 기자회의 파트너 단체 구성원, 관련 전문가, 판사, 인권 활동가 등에게 설문 조사를 보내 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진다. 2019년 기준으로 언론의 자유도가 높은 국가로는 핀란드, 노르웨이, 아일랜드, 스웨덴, 덴마크이다. 자유도가 거의 없는 나라는 북한이며 그 뒤를 에리트레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미얀마 등이 있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2019년에 발표한 세계 언론 자유 지수에서 한국은 41위에 불과하다.

언론의 자유에 대한 가치를 중요시 하는 이유는 하나이다. 언론인 스스로의 독립성을 확보하여 언론의 자정기능이 작동하도록 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함이다. 언론이 권력기관으로 작용하는 사회는 공정하지 못한 사회의 지표가 되는 것이다. 언론이 권력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했던 과거는 사법, 행정 등의 사회 전반에 걸친 국가기관과의 유착관계를 만들어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 그럼에도 언론이 갖는 자정능력은 역사성에서부터 기인한다. 그것은 저널리즘에 대한 확고한 가치가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회적 책임은 저널리스트의 도덕적 가치가 분명히 제시되어 있음에 있다. 여전히 옐로우 저널리즘이 존재하고 제3의 권력으로 사회에 존재하고 있음에도 저널리즘의 사회적 책임과 도덕적 가치가 언론의 명분을 제공하고 있는 현실에서 진정한 저널리즘 역시 존재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언론 현실에서 사라져야 하는 것은 진영논리다.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으로 구분되어지는 언론현실은 타파되어야 한다. 사실보도를 가치로 하는 언론환경에서 진영논리는 그 자체로 모순을 갖고 있는 것이다. 대중의 판단을 미리 예단하기도 하고 심지어 의도적으로 대중적 심리를 이용하고자 하는 언론의 행태는 불식되어야 한다. 대중의 관심을 정치싸움에 묶어두는 국내 언론의 편 가르기 행태는 결국 국민의 정서를 둘로 나누고 다시 언론이 이를 이용하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또한 사건사고를 중심으로 하는 언론보도와 대중의 관심을 지나치게 자극하여 상품화하는 경향을 지양하여야 한다. 과장된 사건사고의 보도는 사회를 병들게 하고 대중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사건사고를 통해 국민의 알 권리와 이에 대한 대중의 경계심을 일깨운다는 명분으로 지나친 취재경쟁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일부의 문제를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게 하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 될 수 있으며 오히려 사회불안요소를 가중시키고 범죄를 쉽게 모방하는 역효과를 가져온다.

사건사고 만큼 미담이 언론뉴스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할 수 있다면 그 사회는 건강할 수 있다. 그러나 즐겁고 좋은 뉴스라는 것은 일상에 늘 자리하고 있으나 이를 취재하고 사실 확인을 하는 작업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러나 이는 의지의 문제이다. 현대사회는 정보통신이 발달하였고 대중의 제보나 기고를 통하면 특정한 공공기관을 통해 때마다 생산되는 사건사고기사에 비하여 부족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건사고에 대한 보도는 원칙적으로 사실보도에 의한 원칙을 기준으로 최소화하여야 하며 우리가 외국에 대한 기사를 기술하듯 냉정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또한 세계 각 국의 긍정적인 기사를 소개하는 것도 확대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 의견에 대한 인용이 기사의 목적을 위해 이용되는 방식도 경계되어야 한다. 기사의 중간에 삽입되는 전문가 의견은 구색을 맞추고 자신의 의견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흔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기사의 방식 중 취재원을 모 사람으로 일반화하는 것처럼 모 전문가를 임의로 사칭하거나 전혀 전문성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의견을 보도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또한 전문가 의견이란 것이 필요한 전문 영역에 대한 서술에 그쳐야 함에도 그를 통하여 결론을 유도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것은 옳은 취재가 될 수 없다. 이는 결국 우리사회에 만연하는 전문가 만능주의를 키우는 이유가 되고 있는 것이다. 특정 분야의 전문지식이 갖는 전문성은 사실 확인을 위한 방법에 한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전문성의 모호함도 포함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공정성 확보는 사실보도에 있다. 언론이 사회문제를 다룸에 있어 의도를 숨기고 공정성을 포장하는 행태는 불식되어야 한다. 자신의 이론을 주장하는 학자가 되어서도 안 되고 자신이 옳다고 이상을 펼치는 정치지도자가 되어서도 안 된다. 사실보도의 냉철함은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를 펼쳐 놓는 것이며 대중적 요구가 돈이 되는 자본의 논리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언론은 세계의 다양한 문제에 시각을 돌리고 보편주의적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국내 언론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언론의 관점을 세계의 보편적 시각에서 바라보게 하는 객관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 한국 언론이 아시아 중심 허브로 도약한다는 목표는 중요한 문제다. 이는 우리의 문제를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계기뿐만 아니라 세계를 선도할 수 있다는 국민의 자부심을 키우는 환경을 조성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아시아 언론의 중심에 있었던 홍콩이나 일본의 언론환경이 변화를 갖고 있다. 과거 우리에게 불리한 여론을 조성하고 의도적인 왜곡을 일삼았던 일본 언론이 일본의 국제적 영향력과 함께 쇠퇴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상황에서 우리의 언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세계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우리가 일본을 통해 타산지석을 삼아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갖는 폐쇄성의 결말이다. 우리 언론이 가져야하는 보편주의 가치는 세계 속에 날로 국제적 위상을 더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외교력에 날개를 달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문제에 빠져 언론이 국민적 갈등을 부추기는 행태가 계속되어진다면 우리가 원하는 나라는 요원한 현실이 된다. 언론개혁은 언론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하며 인류역사가 이루어낸 언론의 가치는 그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언론이 이를 실행하는 실천이 필요한 것이다.

[전국매일신문] 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waterwrap@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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