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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익의 시선]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는 사회는 정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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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익의 시선]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는 사회는 정체한다
  • 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 승인 2022.02.2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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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세계 선도국가가 되기 위한 조건, 인류의 공존

미래를 상상한다는 것이 지도자의 자질만은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미래를 상상한다는 것은 정치지도자가 그러한 사회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도 조건이 되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만약 그러한 상상을 하였다면 그는 유신체제를 만들며 영구집권을 시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민주화된 우리 사회의 역동성은 당시의 모든 사회지도자들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이다. 당시로서는 우리가 선진국에 진입한다는 사실이 요원한 현실이었다.

우리는 특정한 세대가 산업화에 기여하고 특정한 지도자가 이를 이끌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꿈을 꾸는 국민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일제의 암울한 시대에도 우리의 선조들은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고 여기에는 수많은 외국인들의 도움도 있었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의해 교육이 식민지 필요인력을 양성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어진 것도 사실이었지만 이는 반대로 국민의 교육수준을 높이기 위한 국민의 요구에 부합한 것으로 만들었다. 지금도 저개발 국가에서 가난으로 허기진 아이들을 노동의 현장으로 내몰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 당시의 한국국민은 참으로 특이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미래를 꿈꾸는 민족, 이것이 우리의 실체이다.

우리는 그동안 선진국의 꿈을 향하여 달려왔다. 아무도 이러한 현실이 이루어진다고 예상했던 사람은 없었다. 1996년 12월 한국의 경제 규모가 성장하면서 개방에 대한 외국의 압력에 의해 OECD에 가입하는 순간에도 우리가 선진국에 진입하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음에도 우리는 계속 배고픔을 호소했고 최근까지도 대부분은 우리가 선진국이란 사실을 모르고 살고 있었다. 비로소 지금에 와서야 국민 모두가 선진국이 된 것 같다는 사실에 동의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국민의 생각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생각한 선진국은 완벽함이었다. 서구유럽을 향한 이국적 향수와 더불어 허상을 바라보고 있었고 우리를 비교하며 우리의 단점을 부각하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도 선진국이 되었음을 인식하게 되고 소위 선진국의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알아가게 되면서 우리 또한 방황에 빠지게 한다. 이제는 우리가 더 이상 쫓아가며 배워야 할 대상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복지가 서구유럽을 흉내 내는 수준에 머물러 있고 이를 적극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정책적 노력이 부족하였다는 것도 한몫을 하고 있다.

국가의 경제발전은 나라를 유지하고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현실적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현실적 가치에만 모든 것을 부여하는 것은 사회의 그림자를 만드는 이유가 되었다. 사회에 돈이 넘쳐남에도 그러한 경제적 수혜가 자신과는 멀게 느껴지고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는 것도 새로운 사회불안 요소와 갈등을 만들고 있는 요인이 된다. 지난 군사정권과 재벌경제는 우리나라의 산업 기반을 만들기 위하여 효율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은 사실이다. 부족한 자본의 집중적 투자가 가능하게 하였고 효율적으로 산업기반을 구축하는데 이바지하였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었다. 단편적이고 단순한 시각에서 정책을 시행한다는 것이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경제구조가 광범위해지고 다양한 산업의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우리의 경제 체제에서 일방적으로 왜곡된 정책은 오히려 악영향을 주게 된다. 거시적 안목에서 경제정책이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인문학적 판단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공정한 분배의 문제는 노동, 사회복지, 청년, 여성, 일자리, 부동산 등 국가경제정책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을 요구받고 있다. 선순환 경제체제를 구축해야 하는 것은 지속적인 국가발전을 위한 필연이 되고 있으며 사회가치가 경제적 가치로 인식되어야 가능한 문제이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정체성에 처할 위험이 내재되어 있다. 급속한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실현과 함께 우리도 모르는 사이 선진국에 진입하게 되었지만 머리를 내민 달리기 주자가 방향을 잡지 못하는 형국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갈등요소를 만들어가는 사회적 분위기는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하는 당면한 문제가 되었다. 오래된 지역갈등과 이념갈등, 노사갈등에 더하여 세대갈등이 심화되고 페미니즘, 불법체류, 인종갈등, 지역 이기주의와 집단 이기주의 등의 갈등요소가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경제는 흐름이다. 국가경제정책은 이러한 흐름의 원활한 구조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여야 한다. 이것이 선순환 경제이다. 경제 흐름의 정체는 사회문제에서부터 시작된다. 인간의 삶이 경제 흐름으로 대변될 수 있는 것이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것은 경제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근본이 된다.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이 분리될 수 없는 이유이다. 사회통합의 가치를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가 미래를 꿈꾸는 초석이 된다.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면 사회는 정체된다. 이러한 상상의 힘은 우리의 과거가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가 이를 공유하며 함께하여 이루는 위대함을 보여주었다. 우리의 공동체적 가치관은 실로 대단한 결과를 만든 것이다.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가치는 세계 보편주의 가치로 확장되어야 할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기본가치를 포용하고 있다. 기원전 그리스 아테네에서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고 말하지만 청동기 문명을 이루고 국가체계를 갖추었던 먼 옛날의 인간문명은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것일 수도 있었다. 고조선문명의 존재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를 우리민족이 이어받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민주주의를 실현한다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과정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류역사의 대부분은 권위주의 국가권력의 다양한 형태를 보여준다. 이는 현재까지도 존재하고 있다. 사실상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적 일부를 이루는 대의제, 입헌주의, 제한 정부론, 소유권, 개인적 권리와 시민적 자유 등은 봉건제에 뿌리를 둔 것이며 봉건적 전통의 근대적 변형물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엄격하게 말해 자유주의를 구성하고 있으나 민주주의의 근본적 가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러한 것이 민주주의의 당시 급진성을 완화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통치의 대상에 불과했던 ‘백성’이나 ‘신민’을 새 주권자로 끌어올리려면 ‘근대의 사회적 상상’이 필요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무엇보다도 사회계약론이라는 국가권력에 대한 새로운 방식의 개념이었다.

민주주의는 18세기 후반 ‘민주혁명’과 함께 새롭게 탄생했다. 미국 혁명은 식민 본국인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고 프랑스 혁명은 국왕, 귀족, 교회의 지배계급과 산업혁명으로 부를 축적한 신흥계급인 부르주아 사이의 충돌이었다. 독자적인 무력의 기반을 갖지 못한 도전세력에게 민중을 향한 동참은 필연적인 일이었던 것이다. 도전세력은 기성 권력에 맞서 새로운 권력의 정당성을 주장할 때마다 시민주권을 내세웠다. 18세기 말~19세기 초의 일련의 혁명으로 근대 민주주의가 탄생하기는 했지만 진정한 승자는 부르주아로 통칭되는 자유주의자였다. 자유주의 정치의 핵심은 선거를 통하여 구성된 의회에 의한 대의제 정부였고 막강했던 종교의 영향력을 배제하며 언론의 자유를 비롯한 일련의 개인적 권리, 소유권의 보호, 그리고 정치적 권리로서 참정권 등이 주어졌다. 그리고 참정권을 확대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근대 민주주의는 역사적 타협이었다. 그리고 이후 발전한 민주주의의 가치는 완성된 것이 아니다. 우리보다 앞서 있다는 서구유럽의 민주주의가 과연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느냐는 의문을 다시 품어보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형식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가치의 실현이라는 국민적 의지가 필요한 문제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그들보다 앞서 실현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사회통합의 문제는 이러한 측면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의 가치를 만들어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많은 나라들이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지만 이는 형식에 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종교적인 이유로 또는 민족갈등에 의해서 그리고 개인의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민주주의는 왜곡되어 도전을 받는다. 이슬람 혁명을 부르짖는 이들과 최근의 미얀마나 아프카니스탄의 경우처럼 민주주의는 계속해서 도전을 받고 있다.

우리가 상상하는 우리의 미래는 인류보편주의의 실현에 우리가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의지에 달려있다. 이는 우리에게 내재된 모든 갈등을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 있으며 세계 인류공영에 이바지한다는 목표는 지금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가치가 되어야 한다. 국가는 발전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구르는 수레바퀴와 다르지 않다. 구한말 우리의 정체기는 일제의 침략을 용인하게 하였고 씻을 수 없는 많은 상처를 주었다. 시대에 변화하여 적응하지 못하는 민족은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 역사적 숙명이다. 인간을 이롭게 하는 기술혁신을 이루어가고 인류가 공감하는 새로운 가치 질서를 만들어가야 하며 다른 이를 지켜줄 수 있는 힘도 길러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미래를 상상하고 확신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존재하는 목표가 되어야 한다.

[전국매일신문] 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waterwrap@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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