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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절임배추와 배추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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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절임배추와 배추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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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1.0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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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김장철이다. 제품 김치를 사먹는 가정도 해마다 늘고 있다지만 ‘우리 집 한 해 농사’라는 김장은 가을철 상당수 가정의 대사(大事)다. 

어릴 적 동네 우물가에서 몇 집 함께 어울려 감장하던 풍경이 떠오른다. 엄마가 입에 넣어주던 삶은 돼지고기에 한 가닥 생김치, 그날의 백미(白眉)였다. 세계적으로도 알려진 아름다운 우리 생활문화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밭에서 수확한 배추를 다듬고 소금물에 절여 포장한 배추는 아파트 일색인 요즘 생활에 편리하다. 10~20kg씩 포장한 배추절임 박스를 시장이나 택배 트럭에서 숱하게 본다. 일손을 최소한 절반은 줄여주는 절인 배추는 편리함 때문에 앞으로도 김장 풍경의 대세(大勢)일 것이다.

배추절임과 절임배추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 박스에는 ‘절임배추’라고 적혀있다. 신문과 방송에서도 대개 그렇게 쓴다. 시민들에게는 그 게 ‘기준’이 된다. 따라하는 것이다. 

물론 큰 문제는 아니다. 흔히 써서 굳어진 ‘절임배추’라는 말이 어법(語法)이나 상식에 다소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는 생활 주변의 언어에 관한 얘기를 꺼내는 것이다. 

그러나 워낙 쓰임새가 많은 ‘계절적 용어’인지라 보통 사람, 우리 언중(言衆)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을 것으로 본다. 입에 익어 신경 안 쓰고 늘 말하는 사람들도 ‘이런 얘기가 있구나.’하며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면, 언어(말글)생활에 도움 될 터.

다른 상황을 표현한 말을 보기로 들어본다. 운동장에서 뜀박질하는 어린이를 가리키며 ‘뛰는 어린이’라고 하지 ‘뜀 어린이’라고 하지 않는다. 비슷한 이치로 절여진 배추를 ‘절인 배추’라고 하지 ‘절임 배추’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의 ‘유권해석’은 다르다. 우리나라 언어당국인 이 기관이 ‘밝힌’ 것이면, 군리나 권위를 가진 것이니 믿어야 할 판단일 터다. ‘절임배추’와 ‘절인배추’ 둘 중 뭐가 옳으냐는 시민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문의하신 표현은 모두 쓸 수 있는 표현입니다. 일상적으로는 소금에 절인 배추를 '절임 배추'로 표현하는 듯하며, 한편으로는 '절이다'의 활용형이 '배추'를 수식하는 것으로도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일상적인 표현인 듯하다.’는 짐작과 ‘절이다’의 활용형이 ‘배추’를 수식하는 것이라는 이유를 해석의 근거로 제시했다. 개운하게 궁금증이 풀리는가? 아니면 왜? 최소한 학구적인 엄정(嚴正)함이 활용된 판단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모두 그렇게 쓰는, 기정사실처럼 돼버린 말이니 옳은 것 같다는 설명이다. 또 한 근거는, 비유하자면 ‘뜀 어린이’도 ‘뛰는 어린이’와 똑같다, 신경 쓰지 않고 두 표현 다 같은 용도로 써도 된다는 설명이다.

10여년 사이에 규정이 바뀌었을까? 위 사례의 ‘뜀박질하는 어린이를 ‘뛰는 어린이’라고 하지 ‘뜀 어린이’라고 하지 않는다.‘는 말은 전에 국립국어원이 같은 형태의 누리집 문답(Q&A)란에서 설명한 비유로 기억한다. 

그 때는 ’절임배추‘ 말고 ’절인 배추‘ 또는 ’배추절임‘이 적절하겠다고 했던 것이다. 당시 언론에도 반영됐던 것이다. 나라의 언어 정책이 ’한 입으로 두 말한다,‘는 말 들을 수도 있겠다.  

전체 언어(생활) 중 하찮은 한 대목, 그러나 본보기로서의 중요성은 학문 또는 원칙의 깃발로 여러 시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부담 없는 짐작으로 처리할 사안은 아니다. 언론도 함께 생각해야 할 주제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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