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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어느 식사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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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어느 식사기도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3.04.20 10: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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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 국제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이른 아침 교회에 가려는데 핸드폰 벨이 울렸다. 김포에 사는 선배가 갑자기 한강택지개발지구에 집과 농지를 수용 당하게 되었다며 만나러 오겠단다. 그럼 교회 갔다 와서 점심때 쯤 내가 선배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예배가 끝나기를 기다린 것처럼 휴대폰이 울렸다. 시계를 보니 10시였다. 점심 식기 전에 빨리 오란다. 12시가 넘어 선배 집에 도착했다. 밥 수저를 드는데, 선배가 교회 갔다 온 사람이 식사기도 좀 하라며 빙긋이 웃는다. 교회도 안 다니는 사람이 식사기도를 그것도 빙그레 웃으면서 채근하는 것이 장난기가 내포돼 있었다.

새삼스러이 무슨 식사기도냐며 그냥 식사하자고 해도 막무가내다. 늦은 것에 대한 불만인 것 같았다. 식사기도를 자꾸 종용하는 통에 주방에 있던 형수님과 손님들까지 밥상에 앉히고 식사기도를 시작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이 세상에는 먹을 것이 있어도 입맛이 없어 못 먹는 사람들이 있고, 입맛이 있어도 먹을 것이 없어서 못 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먹을 것과 입맛을 함께 내려 주신 주님의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 음식을 장만하신 주님의 여종에게도 은총 내려 주시옵소서.

아울러 이 음식의 재료들을 이곳까지 오게 힘써 주신 제 눈에 보이지 않는 분들에게도 주님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채소와 곡식을 키워낸 농부들의 수고도, 싱싱한 회를 먹게끔 거친 바다의 풍랑 속에서도 고기를 낚아 올린 어부들의 안전도 지켜 주옵소서. 저와 마주 앉은 선배께서 워낙 술을 좋아하시는데 사악한 술로부터 그의 건강을 지켜 주시옵고, 저에게 강제로 술을 권하는 그의 팔을 내치시어 술잔을 떨어뜨려 주시옵소서.

경건한 식사기도 시간에 실실 웃는 마주 앉은 선배의 얕은 신앙심을 책망 마옵시고, 굳건한 믿음을 주시어 다음부터는 함께 기도하게 하시며, 경건한 저의 식사기도가 길다고 속으로 불평하는 자들을 용서 마옵시고, 그들의 국그릇을 식히어 기름으로 엉겨 붙게 하고 제 그릇만 따뜻하게 지켜 주소서.”

“야! 듣자듣자 하니까, 너 기도야? 설교야? 악담이야?”, “하나님 아버지. 신성한 기도를 모욕하는 앞에 앉은 선배의 무지몽매함을 지극 거룩하게 용서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주님께서 가르친 기도로 식사기도를 이어 나가려 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이어서 자비로우신 하나님. 지금 한강택지개발수용관련 괜한 걱정으로 고통 받고 있는 선배를 불쌍히 여기시어 보상이나 천배 만배 나오게 하여 주시옵소. 선배도 속으로는 좋아하고 있습니다. 힘든 일도 안하고 보상금으로 술집 다닐 일만 그리고 있습니다. 선배가 술집안가고 꼭 교회에 나와 그 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게 하는 기적이 일어나게 뇌를 때려주십시오. 돈 폭탄 맞는 선배 꼭 바른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꼭 하나님 아버지만 믿습니다. 아멘.

“야 장난쳐!”소리에 감고 기도하던 눈을 살짝 떠 보니 숟갈을 불끈 쥐고 있는 것이 금방 날아올 기세다. 밥을 먹다 얹힐 수도 있어서, 가슴을 탁탁 치는데, 이것이야말로 일석이조가 따로 없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많은 죄를 지었나이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선배가 기도하라고 해서 기도를 드렸는데, 장난친다고 한다. “기도 마치는 의미로 찬송 한곡을 부르겠습니다. 찬송가는 429장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로 하겠습니다.” 그날 점심에 밥 한 그릇을 다 먹은 사람은 나 혼자였고, 마주 앉은 선배는 씩씩대며 몇 수저 뜨다 말았고, 형수님은 웃느라 그도 저도 못 먹었다. 이후 명절을 맞아 그 선배 댁에서 떡국을 먹게 되었다. 마주 앉은 선배가 “기도하지 말고 먹자”고 한다. 식사기도하지 말라고 해서 내가 안 할 사람인가 속으로 했다. 그 선배는 지금 장로가 되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문제열 국제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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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순 2023-04-21 20:49:51
교수님 덕분에 많이 웃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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