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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문일지십 然(연)의 마법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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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문일지십 然(연)의 마법 (中)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3.11.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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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한자 然만 붙이면, 모두 ‘그렇게’ 되는구나. 아하!

고기 육(⺼,肉 육) 개(犬 견) 불(灬,火 화)의 세 글자가 모여 ‘그러할 연(然)’이 됐다. 개를 먹은 인류 고대의 식습관이 묻어난 然은, 생각하면 문학적이고 자못 철학적이기도 하다.

어떤 단어에 然을 붙이면, 해리포터의 지팡이 세례를 받은 듯, ‘그 뜻’을 (실하게) 보듬는 말이 된다. 한자는 한 글자가 각각 뜻을 갖는 단어이니, 이런 경우는 숙어 즉 익은 말이다.

자연(自然)은 스스로 저절로 自의 뜻이 그러함이라 ‘절로 그러함’, 의미심장하구려. 19세기, 서구문명 받아들이던 일본이 nature(네이처)를, 원래의 뜻에도 불구하고, 自然이라 번역한 것은 philosophy(필로소피)를 ‘밝은(哲) 공부(學)’ 철학으로 정한 것처럼 적절한 작업으로 본다.

함께 ‘然의 마법’으로 들어가자. (포털의 사전 같은) 인터넷 국어사전 검색창에 ‘*然’을 적고 엔터키를 누르면 바로 마법은 시작된다. 흔히 쓰는 말 중에서 뒷 글자가 然인 말을 찾으라고 지시한 것이다. 한 포털사이트 국어사전의 경우 350여개의 검색 결과가 떴다. 

자연(自然), 그 깊은 뜻은 설명도 길더라. 과연 ‘과연(果然)’은 무슨 뜻일까? 꼭 그리 될 수밖에 없다는 필연(必然)도 나온다. (뭔가에) 얽매이지 않고 넘어선다는 초연(超然),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는 우연(偶然), 예기치 못한 사이에 급히 나타난 돌연(突然)도 이어진다.

일목요연(一目瞭然)은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또렷[瞭]하다.’는 뜻이다. ‘명료하다’는 말에서 본 단어다. 천연(天然)은 사람의 힘을 가하지 아니한, 自然같은 말이다. 미연(未然)은 아직 정해지지 아니한 때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라.’처럼 쓴다. 

이렇게 말의 속뜻을 톺아 생각하는 것은 말글의 공부에서 당연(當然)하다. 사람 사이에서 언어로 소통하는 일의 본연(本然)이기 때문이다. 이런 공부로 사람은 의연(毅然)한 품성을 갖게 된다. 毅는 (마음이) 굳세다는 뉘앙스를 지닌 의젓한 단어다. 

단박에 12개 숙어가 제시됐다. 然의 마법을 대충이나마 열거하자면 이런 노력을 서른(30)번이나 거듭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신기하고 재미있으니 단연(斷然)코 계속하자.

은연(隱然) 중에 세상을 숙연(肅然)하게 만드는 사례들이 있다. ‘사랑’ 외치는 종교들이 실은 전쟁과 혐오의 핑계나 논리였다는 사실을 최근 세상사에서 직시하면, 모골이 송연(悚然)하지 않을지. 悚은 두렵다는 뜻이니 무서워 몸의 털[毛 모]과 뼈[骨 골]가 곤두선다는 얘기다.

이런 사례 다 열거하는 것은 공연(空然)한 헛수고가 될 수도 있다. 다만 마법 지팡이가 있으니 이제 마법사의 제자들은 쾌재 부르며 신나게 수련할 것. 이때 사전(辭典)은 핵심 도구다.

마법의 원천은 然이 가진 언어적 함의 즉 깁골문 이후 3천5백년 동아시아 문자 역사의 더께에 담긴 것이리라. 가히 또 능히 명상의 계기로 삼을 만하다. 

‘然의 마법’ 上편 발표 후 반론이 있었다. 개불고기가 제물(祭物) 즉 제사의 희생(犧牲)이었지 사람이 먹었다는 것을 표현함은 아니었으리라는, 아마 애견가(愛犬家)의 주장이었다. 

좋은 지적이다. 그러나 제물인 ‘희생’의 犧자 속 소[牛 우]나 양(羊)도 제사 후 사람들이 먹었을 것이다. 제 먹지 못할 것을 설마 조상에 바쳤을까?

전쟁과 살인 등 ‘먹을 것도 아니면서, 생명을 죽이는 (문명의) 악습’을 옛 식인풍습에서는 야만이라 여겼을 것이라고 추론한 인류학의 에피소드도 있다. 전쟁을 멈춰라. 

왜 사람이 중심이지? 문명은 보듬을 가치가 있는가? 當然한가? 세상은 변한다. 주역(周易)이나 정역(正易)의 바뀔(꿀) 易이다. 이런 성찰, 문자 공부에 있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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