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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필의 돋보기] 발길 끊길 위기에 처한 제3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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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필의 돋보기] 발길 끊길 위기에 처한 제3지대
  • 최승필 지방부국장
  • 승인 2024.02.1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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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필 지방부국장

중국을 전한 시대 무제(武帝) 때 급암(汲)과 정당시(鄭當時)라는 충신이 있었다. 급암은 의협심이 강하고 성품이 대쪽 같아 황제 앞에서도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다 하는 편이었다.

급암은 동료 대신들이 그 점을 나무랄 때면 이렇게 반박했다고 한다. 

“폐하께서 이 사람이나 공들 같은 신하를 두심은 올바른 보필로 나라를 부강케 하고, 백성들을 편안케 하시고자 함인데, 누구나 듣기 좋은 말만 하여 성총(聖聰)이 흐려지기라도 한다면 그보다 더한 불충이 어디 있겠소? 그만한 지위에 있으면 설령 자기 한 몸 희생을 각오하고라도 폐하를 욕되게 하진 말아야 할 것이오” 반면, 정당시는 후덕하고 겸손하며 청렴한 인물이었다. 자신의 손님은 문밖에서 기다리는 일이 없게 하고, 벼슬아치의 사명감으로 집안일을 돌보지 않았으며, 봉록과 하사품을 받으면 손님이나 아랫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눠 줬다.

이처럼 이 두 사람은 너무 개성이 강한 탓에 경계의 대상이었고, 벼슬살이가 순탄하지 못해 면직과 재등용, 좌천을 거듭했다고 한다. 이들이 현직에 있을 때는 방문객이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었지만, 불우한 신세가 되면서 모두 발길을 끊어버려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사기(史記)로 유명한 사마천(司馬遷)은 이들의 전기(傳記)를 쓰고 난 뒤 다음과 같은 말로 야박한 세태를 비판했다고 한다.

“급암과 정당시 같은 현자라도 권세가 있으면 빈객이 열 배로 불어나지만, 권세를 잃으면 금방 떨어져 나간다. 그러니 보통 사람의 경우는 더할 나위 있겠는가!”라며 “면직이 되고 나니 모두들 발길을 끊는 바람에 집안이 너무나 고적해 마치 ‘문밖에 새그물을 쳐 놓은 것(門前雀羅(문전작라) 같더라”고 한탄했다.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을 하루 앞둔 지난 9일 각 세력을 대표하는 이낙연, 이준석, 김종민, 금태섭 등이 뭉친 제3지대 군소 정당이 합당에 전격 합의했다.

당시 조응천 의원은 ‘명절선물 제3지대 합당 합의’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민족의 대명절 설날을 맞아 한국 정치에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며 “제3지대가 ‘개혁신당’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가 됐다”고 했다.

그는 “실망이 아닌 희망을,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여드리겠다”며 “민심과 국민 상식에 동떨어져 기득권과 개인을 위한 정치가 아닌, 우리가 실질적으로 직면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강조했다.

설 연휴 첫날인 이날 오전에는 제3지대가 용산역에 함께 모여 합동 명절 인사를 통해 “통합의 정치를 국민 여러분께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조만간 기호 3번을 얻을 원내 의석수 확보를 호언장담(豪言壯談)하기도 했다.

통합 개혁신당의 현재 의석수는 김종민·조응천·이원욱·양향자 의원 등 4석이지만 녹색당과 합당한 정의당이 심상정의 의석에 비례대표를 포함, 6석이기 때문에 원내 의원 3명을 더 영입해야 기호 3번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여야 거대 정당에서 이탈한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 원칙과상식, 새로운선택 등 4개 정치 세력이 합당해 ‘빅텐트’ 단일 정당 아래서 4·10 총선을 치르기로 한 것이다.

당시 이준석을 내세운 개혁신당의 경우 통합을 통해 당명과 색깔, 공동대표직을 맡았지만 통합 대상인 ‘새로운 미래’ 등은 진보·좌파 일색으로, 보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거나 희석될 여지가 많아 보인다는 당내 우려의 목소리가 초반부터 나오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준석을 내세운 개혁신당에 입당한 지 채 한 달이 안 됐음에도 탈당을 선언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기롭게 시작한 제3지대의 합당이 오히려 지지층 이반(離叛)으로 인한 마이너스 컨벤션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통합 개혁신당은 애초 매주 월·수·금요일 오전 최고위원회를 열기로 했으나 지난 16일 예정된 최고위를 갑작스럽게 연기했다.

이를 두고 정의당 류호정 전 의원과 배복주 전 부대표의 개혁신당 합류에 대해 이준석 공동대표와 이낙연 공동대표가 이견을 보이고, 두 세력 간 신경전이 벌어진 것이 배경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런 가운데 양향자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 “가치와 비전, 철학과 목표가 분명하지 않고 정치적 세력 규합만으로는 100년 정당은커녕 일주일 정당도 안 된다는 게 제 판단”이라며 “좌우, 진보 보수, 이념, 정파의 낡은 가치를 버리고 이제는 건너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권자들이 이번 총선에서 ‘한국의희망’ 개혁신당에 자랑스럽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시리라 믿는다”고 했다.

하지만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초반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잡음’과 관련, 16일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이준석의 개혁신당과 이낙연 신당은 생리적으로 맞지 않는 정당”이라며 “이준석 공동대표는 ‘개혁신당 깃발 아래 다 모이니 나한테 흡수되는 것’이라고 생각해 선뜻 합당에 동의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3지대 정당, 새 정치 세력은 미래지향적인 성격을 가져야 하고, 국민에게 명분을 소상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 제3지대를 보면 사실 구정치인이 설치는 또 그런 판이 돼버린 것”이라며 지적했다.

개혁신당이 하루빨리 내부 갈등을 수습하고, 가치와 비전, 개혁 정신을 확립해 총선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겉은 화려해 보이나 속은 가난하다’는 의미의 외화내빈(外華內貧)이라는 말이 있다. 무늬가 실제보다 지나치다는 뜻으로, 겉만 화려하고 속은 부실한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반성과 실속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제3지대의 통합을 통한 새로운 구상(構想)이 국민들로부터 어떠한 평가를 받을지 아직 미지수다. 분명한 것은 정체성·이념 갈등과 공관위원장 선임 및 공천 문제로 인한 세력 간 주도권 다툼이 계속될 경우 반드시 ‘문전작라’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는 점이다.

[전국매일신문] 최승필 지방부국장
choi_sp@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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