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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존대어의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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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존대어의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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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3.05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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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고마워요, 대리님.” 새 논란의 언어(규범)적 해석

우리말글 어법(語法)의 특성 또는 까다로운 점 중 하나다. 상대방에 따라 말을 올리거나 비교적 덜 올리는 존대어(尊待語)의 규칙은 자칫 틀리거나 오해를 부를 소지가 크다. 그래서 자주 시비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애매하고 모호함이 탈을 부르는 상황이기도 하다.   

전에는 ‘어른’ 앞에서 그 ‘분’보다 나이가 적은 ‘어른’을 가리킬 때 선택하는 어법, 가령 “할아버지, 아비가 진지 드시랍니다.”처럼 말해야 한다던 규범 즉 압존법(壓尊法)이 때로 문제가 됐다. 여기서 ‘아비’는 말하는 이의 아버지다. 규범은, 낡으면 스스로 빛이 바랜다.

“대리님 고마워요”…신입 말투 거슬리면 꼰댄가요? 제목의 쿠키뉴스 유민지 기자 기사를 보며 격세(隔世)의 흐름을 느꼈다. 이제 이런 주제가 얘깃거리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 몇 줄 인용한다.

...Z세대(1997~2012년생)의 사회진출이 본격화되며...밀레니얼 세대(M세대 1981~1996년생)와의 충돌이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직장에서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고마워요’ ‘수고해요’ ‘미안해요’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의견이 엇갈린다...

저 얘기의 ‘발화지점’인 어떤 커뮤니티의 왈가왈부(曰可曰否)도 길게 설명했다. 정리하자면 말투 즉 어법이 (선배 또는 상급자에 대한) 격식에 안 맞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 기자는 ‘예의범절과 사회경험의 부족’에 혐의를 두고 문제를 풀었다. ‘세대 간의 차이(충돌)’를 염두에 두고 그쪽으로 몰아가는 듯도 했다. 기사에 전문가로 등장한 사회학과 교수의 얘기 또한 이를 사회(학)적 또는 세대 간 구조적인 문제로 해석하는 논지였다. 

더 중요한 원인을 빼먹지 않았을까. 현대 한국어의 활용에서 중요한 문제제기가 될 수도 있는 그 기사의 가치를 다소간 깎아먹었을 수도 있었겠다. 정작, 문제의 핵심은 Z세대의 ‘싸가지’가 부르는 M세대와의 세대차(제너레이션 갭)가 아니다. 그럼?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 사회의 언어교육 △개인(들)의 언어 공부에 초점을 맞췄으면 더 적절했겠다고 보는 것이다. 또 △ 위아래 사람들 사이의 품격과 논리를 갖춘 어법체계가 확실하지 않은 우리말의 애매모호한 어법도 논란의 도마 위에 올려야 한다.

위 세 가지 문제는 트라이앵글처럼 엮인 딴딴한 갈등이겠다. 우선 한국어의 어법과 문법에 관해 각급 교육기관에서 적절한 교육이 제공되고 있지 않음을 지적한다. 

대충, 집에서 선행(先行) 학습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현재의 한국어인가. 한글은 읽되, 뜻은 짐작 못하는 문해력 결핍의 시대, 책맹(冊盲)시대의 도래다. 생각 없는 세대를 빚었다.  

고마워요 수고해요 들어가요 고생해요 미안해요 등의 ‘~요’는, (현대의) 관례적 분류로 존대(尊待)와 하대(下待) 사이의 말대접으로 본다. 교과서에 없는, 배워본 적 없는 어법이다. 

현장에선 유치원 선생님이 아동들에게 하는 말투쯤으로 어울린다. 그 구분을, 필요한 배려의 언어를 우리 청년들이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것이다. ‘하십시오’와 ‘해라’ 같은 확실한 존대와 하대 사이의 예사 말투를 대충 존대어로 활용하다 생기는 시시비비의 현장인 것이다.  

존칭(尊稱)과 존대어가 (우리말에 비해) 없다시피 한, 영어 같은 언어를 ‘가장 중요한 공부’로 삼고 자란 세대다. 그들의 의식구조로는 말과 말투에 ‘뜻(의미)’ 말고도 존경과 비하(卑下) 같은 ‘정서’가 담겼다는 것을 쉬 이해하기 어렵겠다. 한국어 공부, 새삼 필요하다 느낀다.

이런 부분(의 변화)까지, 한국어 성능을 개선하는 일이 국어(정책)당국의 책무다. 우리 말글 전문가들이 생활의 여러 쓸모가 아닌, 엉뚱한 주제를 붙들고 있는 게 아닌지...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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