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헌의 하제별곡] 국가살인-나라가 제 딸을 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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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국가살인-나라가 제 딸을 죽이다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1.06.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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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문명비평가·우리글진흥원 고문

며칠 전 뉴스 ‘... 공군 이 모 중사의 죽음에 책임을 지고...’ 들려오는 소리에 얼핏 ‘아이고, 아까운 목숨이 또 갔나보다.’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헌데 그게 아니었다. 공군 참모총장이 사의를 표명했다는 얘기였다. 역시나, 사표는 얼른 수리됐다. 책임을 진다더니...

그가 당한 상황들을, 심지어 그 차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까지, 꼼꼼히 시간대별로 톺아볼 기회가 있었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도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억장(億丈)이 하늘과 함께 무너졌다.

대통령도 ‘억울한 죽음’이 병영문화 폐습에서 왔고 국민께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우직한 충심(忠心) 이해한다. 그러나, 틀렸다. 나라가 지켜주지 못한 것이 아니다. ‘나쁜 몇 놈’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국가 권력이 대한민국의 젊은 여군을 살해한 것이 본질이다. 나라가 죽인 것이다. 바른 해석 없으면 해결책은 허망하다.

박정희 전두환 등의 독재정권 때 늘 있어온, ‘국가살인’의 전형이다. ‘바로 잡겠다.’는 다짐은 처음이 아니다. 이런 마음자세라면 억울한 죽음은, 비통한 사과(謝過)도 앞으로 계속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여기는 빤한 ‘대책’들 이어진다. 우리 시민은 직감(直感)으로 안다. 억울(抑鬱)하다. ‘잘못 없이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거나 하여 분하고 답답하다.’는 뜻이다. 울분(鬱憤) 치민다. ‘답답하고 분한 마음 솟구친다.’는 뜻이다. 시민은, 나도, 울분으로 억울하다.

‘답답하다’는 鬱자는 정글처럼 울창(鬱蒼)하게 꽉 막혔다는 뜻이다. 29획(劃)이나 되는 복잡한 한자도 답답한 그 상황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가 죽음을 택하지 않았던들 세상이 알기나 했을까? 한 사람의 죽음은 한 우주의 붕괴(崩壞)다. 그 죽음에 당신을, 당신 딸을, 당신 아내를 바꿔 끼워보라.

죽음의 그 순간까지도 ‘그들’ 중 어떤 이들은 골프를 즐겼다. 그 속보(續報)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 중사, 이 중사... 미안하다. 부끄럽다. 그대를 생각하며 며칠을 이렇게 보낸다. 세상이 이렇게 되도록 방관한 책임 크다.

앞으로도 계속 아파야 할 것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아무도 (마땅한) 책임을 지지 않고 유야무야(有耶無耶) 흘러갈 것을 생각하니 더 아프다. 어쩌다 이렇게 악독해졌을까? 며칠이나 이 소나기 계속되는지 보자고?

정상참작(情狀參酌)이란 말, 가부장(家父長) 남성중심 기득권 장유유서(長幼有序) 등 세상 활력 떨어뜨리는 구시대 키워드를 정당화하고 음험한 거래를 유지시키는 독배가 되고 있다. 크게 저어한다.

자손(子孫)들을 어떻게 키울 참이냐. ‘재수 없어서 걸렸다’는 말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사람들아, 지금 우리 행실이 무슨 뜻인지 아는가? 안 된다. 아닌 건 아니다. 자를 건 자르자. 우주의 큰 샘, 모성(母性)을 훼손하는 시스템은 방치할 수 없다. 기왕의 폐습 버리지 않고 얻을 건 없다.

차별(差別)하고 혐오(嫌惡)하고 착취(搾取)하여, 나만 잘 살자는 식으로 흐르는 자본주의와 이를 지지하는 현재의 이 제도가 다만 우리(의 국가)인가? 경건하게 인간 섬기겠다고 한 종교는, 그 뜻 포기했는가? 다시 생각하자. 모두를, 바탕까지 바꾸자. 본디의 우리를 복원하자.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문명비평가·우리글진흥원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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