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장의 향기로운 詩] 허방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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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장의 향기로운 詩] 허방다리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1.07.2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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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오장(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이미지투데이 제공]
[이미지투데이 제공]

허방다리             
              - 오영록 作
 
 
도끼를 갈고 있다
날이 설수록 믿음이 간다
힘들이지 않고 쉽게 쪼개질 것이라는 확신 때문에 세우는 날
 
날이 설수록 자신의 상처도 더 깊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애써 지운다
그냥 철석같이 믿고 싶은 것이다
아니 그냥 믿어야 날을 세울 수 있다
 
그러므로 날을 세운 만큼
날이 선 만큼 철저히 믿는다
 
믿음만큼 함정이 깊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 올가미를
스스로 뒤집어쓴다
 
믿음의 깊이와 배신의 확률이 비례한다는 사실조차 부정하며
도끼날을 세우는 순간 가짜 믿음이 먼저 자란다
그렇지 않으면 도끼의 날은 절대 서지 않기 때문이다
 
날이 선만큼 믿음과 배신은 서로의 은밀함에 대하여 타협한다
윷을 놓았다가 백도에 잡힌 말도
잘못 던진 윷 탓이 아닌 달리던 말 탓이듯
도끼는 처음부터 죄가 없다
 

[이미지투데이 제공]
[이미지투데이 제공]

[시인 이오장의 시평]

사람은 주위의 어떤 상황에도 자신을 믿으면 잘 될 거라고 믿는다. 자신감이다. 

이것이 없다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없어 앉은 자리에서 생을 마감하고 말 것이다. 그런 만큼 자신의 믿음이 최고라는 자신감에 취하여 행동으로 옮기다가 대부분 실패하고 후회한다. 

농부가 낫을 숫돌에 갈 때는 어느 작물이든 벨 수 있다는 자신감이 먼저 앞서고 나무꾼이 도끼날을 세울 때는 아무리 큰 나무도 넘어트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산을 오른다. 

사람관계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을 향한 믿음이 없다면 대화는커녕 마주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매번 속는다. 서로의 신뢰는 자신이 먼저 쌓는 것이지만 만나는 순간 자신부터 허물어진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기대치를 높게 잡기 때문이다. 결과를 낳기 전에 얻으려는 욕심이 앞서고 자신보다 상대방의 믿음이 모자라란다는 판단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후회의 동물이라 부른다. 자신감으로 행한 행동이 자신 때문에 무너진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상대방 탓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알면서도 매번 똑같이 반복되는 이유는 뭘까. 믿음만큼의 기억상실증이 존재하기 때문임을 정확히 짚었다. 

자신이 날카로울수록 자신감이 높아지고 상대방을 쉽게 무너뜨리리라 생각하지만 매번 헛방이다. 그때마다 무딘 날을 더 날카롭게 세우지만 함정은 그만큼 깊어져 다시 좌절의 쓴맛을 보게 된다. 

자신감의 크기만큼 올가미는 갈수록 커지고 배신의 확률이 그것에 비례한다는 것을 확인할 뿐이다. 그래도 다시 믿음의 탑을 쌓는다. 어떻게 이러한 것을 풀어낼 수 있을까. 먼저 자신부터 믿음의 탑을 낮춘다. 날이 선만큼 믿음과 배신의 비율을 조금 잡고 은밀하게 타협한다. 

[전국매일신문 詩] 시인 이오장(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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