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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77] ‘인생을 바친다’ 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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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77] ‘인생을 바친다’ 는 것은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21.12.0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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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문제는 타인의 사생활을 밝히는데, 그것도 아픈 과거를 밝혀 ‘부도덕함을 까발리겠다’는데 ‘인생을 바치겠다’는 뜻이라면 당혹스럽다. 우리네 인생이 깃털보다 가볍고, 삶의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허무해지는 순간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어떤 명분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할 순간을 맞기도 한다.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하나뿐인 목숨이기에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니다. 목숨과 바꾸는 명분은 대체로 자신의 사적인 이해관계를 초월한다. 친구를 위해, 가족을 위해, 종교적 신념을 위해, 또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건다.

쉽게 떠오른 대로 대상을 찾자면 김대건 신부나, 안중근 의사 등이 그런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로마 카톨릭 교회 사제인 김대건 신부는 목숨을 건 선교 활동을 하던 중 그의 나이 스물다섯에 순교,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안중근 의사는 죽음으로써 나라를 되찾겠다며 손가락을 끊어 맹세한 뒤 침략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 이국의 차디찬 감옥에서 숨졌다. 우리는 그들을 성인이나 위인이라 부른다.

자극적 소재를 위주로 방송하는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 강용석 변호사가 최근 인생을 걸었다. ‘인생을 바치겠다’는 그의 각오는 ‘목숨을 바치는 것’만큼 비장하다.

그가 '혼외자 논란' 속에 더불어민주당 공동상임 선거 대책위원장직을 내려놓은 조동연 전 위원장을 성폭행한 사람을 찾는데 인생을 걸었다. 선대 위원장직을 내려놓은 조 전 위원장이 “성폭력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었지만 그 생명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있다”며 어린 자녀와 가족들에 비난을 멈춰달라고 호소하자 그가 “앞으로 강간범이 누군지 밝히는데 제 인생을 바치겠다”고 응수한 것이다.

‘뜨악하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의 인생 걸기가 ‘강간범을 밝혀 처벌받게 함으로써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법조인으로서의 사명감이라면 관점은 달라질 수 있다. ‘그 정도에 인생을 걸어야 하는가’라는 딴지가 나올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아주 작고 가치 없는 일일지라도 당사자에게는 목숨이나 인생을 걸만한 일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타인의 사생활을 밝히는데, 그것도 아픈 과거를 밝혀 ‘부도덕함을 까발리겠다’는데 인생을 바치겠다는 뜻이라면 당혹스럽다. 우리네 인생이 깃털보다 가볍고, 삶의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허무해지는 순간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강 변호사는 조 전 위원장의 사생활에 대한 의혹을 제기, 대선정국의 관심을 모으는데 나름 성공했다. 심지어 그의 가로세로연구소는 조 전 위원장의 자녀 얼굴을 눈을 가린 채 공개, 지나친 인권침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지적에 “사실관계를 밝힌 것이 인권침해라고 하면 청문회도 다 인권침해다”라고 반박했다. 자녀 사진 공개에 대해서도 “아이 눈 부위를 검게 가렸기 때문에 엄마 외엔 아무도 알아볼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간범을 밝히는데 인생을 거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어떤 일에 인생을 걸든지 관심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고 치부하면 된다.

다만 공무원도 아니고,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도 아닌 한 사람의 사생활을, 그것도 아픈 과거를 들춰서 모두의 손가락질을 받게 하고 싶다는데 인생을 건다면 누구의 인생이 더 가벼운가를 묻고 싶다.

사실 조 전 위원장의 혼외자 논란은 우리 사회의 관음적 현상을 적나라하게 들어낸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설사 성폭행에 의한 혼외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한 사람의 10년 전 과거를 놓고 그토록 광기 어린 반응을 보이는 게 정상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조국 흑서’의 저자인 권경애 변호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강 변호사에게 전해주고 싶다.

권 변호사는 ‘명예살인’이라는 제하의 글에서 “온 나라 사람들이 그의 남편의 가족들이 되어, 남편의 침해된 명예와 피해를 낱낱이 세상에 발고 하고, 몽둥이 하나씩 들고 그의 안방까지 저벅저벅 쳐들어가 여자를 죽도록 패고 아이 사진과 은행 계좌 잔고까지 샅샅이 뒤져 저잣거리에 전시하는 세상이, 정상인가”라고 물었다.

인생을 걸려면 적어도 이런 비정상의 광기를 바로 잡는데 걸어야 하지 않겠는가.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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