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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화의 e글e글] 군중과 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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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화의 e글e글] 군중과 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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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7.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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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화 미래정책포럼 상임대표

다수결원칙은 다수가 정의라는 믿음을 깔고 있는 원칙이다. 그렇다고 다수결 원칙이 최선이라는 말은 아니다. 다수가 정의를 보장한다는 가정은 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군중(群衆)은 우중(愚衆)이라는 말이 있듯 역사를 보면 실제로 다수의 군중이 우중이 되어 독재자를 키웠던 경우가 많다.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와 구소련의 독재자 스탈린,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세스쿠 등은 모두 군중이 투표로 선택한 독재자들이었다. 

히틀러의 충견이었던 “괴벨스”는 군중이 얼마나 우중인지를 잘 보여준 사람이다. 그는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할 때 처형 집행관들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죽이도록 명분을 만들어 낸 사람이다. 그는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어떤 사람이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던 자였다. 실제로 그는 “99% 거짓에 1%의 진실을 섞으면 얼마든지 군중을 선동할 수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사람이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에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숫처녀가 아기를 낳았다”는 말을 처음부터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수천 번, 수만 번, 수억 번 계속하게 되면 전설로서, 신화로서 자리 잡으면서 믿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거짓을 순리와 천리로 둔갑시키는 선전술을 프로파간다(propaganda)라고 한다. 나치와 공산주의자들이 바로 이 “프로파간다”를 반복해 대중을 선동했기 때문에 오늘날 “프로파간다”라는 단어는 사악한 정치적 획책이라는 의미로 자리 잡고 있다. 

대중심리학을 최초로 정치적 홍보에 이용하여 홍보를 과학으로 승화시켰던 뉴욕대 교수 에드워드 버네이스(Edward Bernays, 1891~1995년)는 1923년, PR전문서적인 『여론 형성(Crystallizing Public Opinion)』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이 인기를 끌면서 그는 약 반세기 동안 수백 명의 의뢰인에게 PR 자문을 했는데 의뢰인 명단에는 대통령부터 노동조합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정계, 재계, 교육계, 언론계, 문화예술계 등을 대표하는 유명 인사들은 물론이고 기업, 기관, 단체가 총망라되어 있었다. 그 결과 수많은 언론과 지식인들이 그를 “PR의 아버지”로 칭송하고 나섰다. 

버네이스는 정부의 모든 홍보를 담당하는 미국 연방정부기관인 공공정보위원회(CPI)에서 일하는 동안 프로파간다의 힘을 직접 경험한 후 “전쟁에 통하는 홍보전략은 평화 시에도 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기업 홍보의 초점은 “소비자에게 필요한 것을 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사고 싶어 못 배기는 것을 파는 데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에서 “가장 먼저 화려한 고객을 확보하라”는 그의 홍보전략이 나왔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토머스 에디슨, 헨리 포드, 아메리칸 타바코 컴퍼니(ATC), 제너럴일렉트릭(GE), CBS 등등을 고객으로 확보하면 사람들은 꼭 필요하지 않아도 사고 싶어 못 견딘다는 것이다. 인기 있는 아이돌이 입고 나온 옷이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는 그 옷이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나도 그런 인기 있는 아이돌과 같은 부류에 속하고 싶다는 충동이 일기 때문이듯 유명인들이 사용하는 물품은 누구나 사고 싶어 하는 물품이 되므로 이들을 고객으로 모시면 상품은 저절로 팔려나간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버네이스는 미국 남성들이 전통적으로 선호하던 회중시계 대신 손목시계를 차도록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손목시계는 여성들이 차는 팔찌를 연상시켰기 때문에 남성들에게는 큰 인기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손목시계야말로 남성적이다”라는 새로운 관념으로 남성들의 욕구를 파고들었다. 또 피아노를 팔아야 할 때는 상류사회를 겨냥한 고급음악회를 자주 열어 피아노가 자연스럽게 많이 팔리도록 만들었다. 그런 버네이스가 “프로파간다로부터 군중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프로파간다에 대항하는 최상의 방법은 더 많은 프로파간다를 하는 것”이라고. 

더 많고 강한 프로파간다로 대중들을 오도하는 것이 과연 정의일까?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다수가 선호한다는 이유로 잘못된 정책을 실시하거나 전쟁을 일으키는 일이 과연 정의로운 일이 될 수 있을까? “민주주의는 반민(反民)주의이기도 하다”는 말은 바로 여기서 나왔다.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면 권력자들의 “프로파간다”에 의해 군중이 우중이 된 경우가 수없이 많았다. 당장 우리 근세사만 보아도 5.16쿠데타, 12.12 군사반란, 촛불혁명 등등은 모두 우중인 군중을 앞세워 정당화했던 정치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런 우중으로서의 군중은 3.1독립운동, 4.19혁명 등에서 보듯 언제든지 권력에 저항하는 폭민(暴民), 명령을 따르지 않는 조민(刁民)이 될 수 있는 군중들이다. 세계적 차원에서 보아도 프랑스 대혁명, 영국의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 중국의 신해혁명, 독일의 11월 혁명 등등 역시 모두 민중들이 들고일어난 혁명이었다. 이렇게 군중은 우중(愚衆)이었던 때도 있었지만 현중(賢衆)이었던 때가 더 많다. 우중으로서의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암)

[전국매일신문 칼럼] 윤병화 미래정책포럼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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