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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무쇠난로에 대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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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무쇠난로에 대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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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1.29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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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 국제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설을 지나면서 아침 최저기온이 -15도까지 뚝 떨어지며 동장군이 다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지난 25일 아침 강원도 철원지역 수은주가 -28.1도까지 떨어지는 등 강추위가 절정에 이르면서 역대 최저기온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다. 마침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자가 왔다. 요즘 날씨가 추우니 학교 갈 때 옷 따스하게 입고 가라고 말을 전하면서 학교에 난로불은 피냐고 물어봤다. 어린 손자 녀석은 난로 자체를 모르고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옆에 있던 며느리가 “요즘 학교는 전기난방시설이라 난로는 없다”고 한다.

그렇지, 지금 시대에 난로가 있을 턱이 있나. 머쓱해지면서 옛날 난로생각이 났다. 50여 년 전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얘기다. 겨울 등교길에는 제일 먼저 우리 반 교실 밖으로 빠져나온 난로 연통부터 확인하는 버릇이 있었다. 누렇거나 허연 연기가 꾸역꾸역 나오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조개탄에 불을 붙이기 위한 불쏘시개에 불이 붙는 중일 것이다. 연통에 실연기 가닥하나라도 피어오르지 않는 날은 당번의 불붙이는 실력이 시원치 않아서 얼굴과 손에 검댕이 칠만 하고 불을 제대로 피우지 못하는 중일 것이다.

어느 날 교문을 들어서며 올려다본 우리 교실의 연통에서 파란연기가 포슬거리며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오늘 당번이 제대로 불을 붙여 벌써 조개탄에 불이 붙어 조개탄 타는 연기가 올라가는 것이다. 오늘 당번 녀석들은 필시(必是) 겨울방학 동안에 들판에서 불장난으로 시간이나 때운 향산리 녀석들일 거라 교실 문을 들어섰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불이 붙어서 인지 무쇠난로는 벌겋게 달궈져 있었고 지급된 조개탄이 수업 시작도 전에 바닥을 보였다.

수업하러 들어왔던 선생님이 조개탄의 빈 양동이를 들여다보고는 조개탄을 아끼지 않았다며 당번부터 혼을 냈다. 조금 전까지 득의만만했던 당번들이 풀이 죽어 함석 양동이를 들고 석탄창고에 가보니, 각 교실에 조개탄 지급을 끝낸 소사(小使) 아저씨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후수업까지 해야 하는데, 2교시가 채 끝나기도 전에 무쇠난로의 벌겋게 달궜던 부분이 식어가고 노기(怒氣) 서린 선생님의 눈치만 살폈다.

화가 난 선생님이 급기야는 아이들을 타작했던 지휘봉으로 몇몇을 지목하며 나무를 주어 오라고 밖으로 내쫓았다. 어린애들이 추위 속에 나무를 구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한 시간여 만에 나무뿌리를 캐서 쪼개 말린 것, 과일 궤짝분해해서 묶은 것, 나무기둥을 자른 것 등을 들고 들어왔다. 산에서 나무를 한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좀 떨어진 마을에서 살그머니 집어 온 것들로 보였다.

선생님은 주워온 장작을 난로에 넣고 불을 짚었다. 불꽃과 함께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했다. 말라붙은 인분 타는 냄새 같기도 하고 지린내가 졸아 붙는 냄새 같기도 한데, 그 고약함에 구토가 날것만 같았다. 아이들이 해온 나무 중에 변소 발판으로 사용했던 나무가 섞여 있었던 것이다.

통풍을 위해 복도 쪽 창문을 열었는데, 냄새가 복도를 타고 건물 한 개 동에 있는 각 교실 전체로 파고 들어갔다. 각 교실에서도 냄새 때문에 난리가 났는데, 선생님들이 냄새의 출처를 찾느라 문을 열고 나와 두리번거렸고 아이들도 각 교실 문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결국 우리는 난로속의 장작불을 꺼야했다. 물 뒤집어쓴 난로에서는 증기기차 하체에서 수증기 나오는 소리처럼 연신 지지직거렸고, 창문으로는 기차의 수증기처럼 연신 김이 새어 나왔다. 교실은 사방 문을 열어 제처 놓아 시베리아벌판을 방불케 할 정도로 더 추웠다. 몹시 추운 날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남의 나라 얘기만 같았는데 최근 난방비 문제로 나라전체가 시끄럽다. 난방비폭탄이란 표현이 과하다 싶은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을 정도로 서민들의 생활에 큰 위협이 시작된 것 같다. 문제는 이제 시작이라고 하니 더 걱정이다. 이제와 무쇠난로를 다시 들일수도 없고. 이러던 차에 정부와 전국의 지자체들이 서민들을 위한 난방비 지원책을 앞을 다퉈 발표한다. 반갑기 그지없다. 이 추운 겨울날 자신의 몸 하나 녹일 수단이 없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계속해서 정부관계자들의 세심한 주의를 당부할 뿐이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문제열 국제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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