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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격화된 반도체 전쟁에서 살아남는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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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격화된 반도체 전쟁에서 살아남는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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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5.29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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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중국이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테크놀로지(Micron Technology)’ 제품에서 사이버 보안 위험이 발견돼 “안보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라는 이유로 데이터·운송·금융 등 정보 인프라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제품 구매를 중단하고 중국 내 사용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은 “마이크론 제품에서 비교적 심각한 네트워크 보안 문제가 존재해 중국의 핵심 정보 인프라 공급망에 중대한 안보 위험을 초래한다”라며 이같이 조치했다. 중국이 미국의 반도체 기업에 사상 처음으로 제재를 가한 조치로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갈등이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2019년 미국이 같은 이유로 중국의 핵심 정보기술(IT) 업체 화웨이·ZTE에 부과한 제재를 내린 지 4년 만에 중국이 유사한 반격에 나선 것이어서 미국의 대중 제재에 대한 보복 조치로 평가된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의 대(對)중국 제재에 대해 “기술적인 괴롭힘과 무역 보호주의의 전형”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해왔는데 이를 가시적인 실행으로 옮긴 것이다. 중국은 마이크론에서 수입하던 낸드플래시는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등 자국 기업에서, D램은 한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조달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미국 기업에 타격 주면서 자국에 필요한 공급망 차질은 최소화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어 보인다.

이처럼 미·중 반도체 전쟁이 서로 제재를 주고받는 본격적인 전면전 대결 양상으로 비화하고 있어 한국 정부와 기업이 더욱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인공지능(AI)과 슈퍼컴퓨터 등에 쓰이는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와 부품의 중국 수출을 금지했다. 지난 1월에는 미국의 요구에 따라 반도체 장비 강국인 일본과 네덜란드도 대중국 수출 통제에 동참했다.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중국 내 반도체 공장에 첨단 장비를 증설할 수 없으며, 오는 10월까지만 한시적 유예를 받은 상태다. 이에 따라 한국 반도체 산업도 신속히 재편 수순(手順)을 밟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자체 기술력을 키워 해외 의존도를 낮추려는 중국의 행보를 미국은 자국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대(對)중국 압박 수위를 가일층 높여 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대응 수준을 높일수록 중국 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반도체 경쟁력도 그만큼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한국으로선 중국의 굴기만큼 일본의 부활도 경계해야 한다. 미·중 대립의 틈을 타 일본은 반도체 부활의 호기로 삼고 있다. 일본은 2021년 발표한 ‘반도체·디지털 산업 전략’에 따라 국가 차원의 반도체 육성과 함께 관련 기업들도 최근 2년 동안 2조 엔(약 19조 2,700억 원) 넘게 투자에 나섰다. 중국 위협 속의 대만, 중국과 이웃한 한국의 지정학적 여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G7 개막 전날인 지난 5월 17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세계 반도체 기업들을 한자리에 모아 삼성전자 등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 3곳으로부터 투자 약속을 받아냈다. 마이크론은 5조 원을 들여 일본에서 차세대 D램을 생산할 계획이고, 삼성전자와 대만 TSMC도 일본 투자를 확대하기로 했다. 영국도 반도체 산업 인재 육성과 보조금 지원 등에 약 1조 6,000억 원을 투입할 방침이다. 미국·유럽연합(EU)의 대규모 반도체 산업 육성책에 맞서 자국 업계를 보호하기 위해 내놓은 조치다. 지원 규모가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반도체 시장에서 별로 존재감이 없던 영국까지 발 벗고 나설 정도로 경제 안보 측면에서 중요해진 반도체 산업의 위상과 치열한 글로벌 경쟁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국도 올해 들어 반도체 투자에 대한 세액 공제율을 최대 25%로 상향하고 무려 300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민간 투자를 바탕으로 수도권에 세계 최대 규모의 신규 첨단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에 시동을 거는 등 반도체 육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대만·일본·중국·EU뿐 아니라 영국·인도까지 뛰어든 글로벌 반도체 각축에서 이겨내려면 한시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근간이다. 산업의 쌀인 반도체의 경쟁력을 잃게 되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국가 대항전’이 된 치열한 기술 패권 전쟁에서 기선을 잡고 살아남으려면 초격차 기술 개발과 고급 인재 육성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초격차 기술 우위 점유는 물론이고 안보 동맹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할 국익 외교의 선제적 노력에도 총력을 경주해야 한다. 미국 주도의 탈(脫)중국화에 나서더라도 경제적 타격을 최소화하는 외교전략과 국익을 최 우선한 실리를 잃지 않는 외교기조를 견지해야만 한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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