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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영부인과 영애-말의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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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영부인과 영애-말의 ‘계급’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3.11.14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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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한자어는 높임말이고, 우리말은 낮춤말인가? 

동영부인(同令夫人)이란 말, 생각하니 본지 오래됐다. 전에 모임이나 행사의 초대장에 받는 이의 아내를 함께 초대한다는 뜻으로 적던 말이다.

부인(夫人)은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이름이다. 전에는 사대부 집안에서 안주인을 이르던 이름으로, 자기 아내를 부르는 호칭으로도 썼다. 마누라 여편(네) 등이 관행상 아내를 하대(下待)하는 말이었음과 비교된다.

영(令 령)은 다양한 뜻이 있는데 그 중에는 ‘좋다’ ‘아름답다’는 의미가 있다. 영부인(令夫人)이라 하면 상대방의 부인을 존경의 뜻 담아 부르는 다소 공식적인 이름이다. 친구 사이에 “영부인께서는 요즘 안녕하신가?”하고 묻는 인사의 대화를 근자에 듣기 어려워졌다. 

동영부인의 동(同)은 ‘함께’의 뜻. 한자 없이 ‘동영부인’이라 쓴 초대장도 전엔 보았다. 일반적으로 쓰였던 것이다. 요즘에는 시험 준비로 외웠던 고사성어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부인과 함께 오세요.’라는 뜻을 표기하는 비교적 격식 있는 말 하나를 사실상 잃은 것이다. ‘부부동반(夫婦同伴)’이 있긴 하지만 점잖은 권유의 어감(語感 뉘앙스)이 훨씬 덜하다.

대통령실에서 발표한 보도자료를 활용해 쓴 것으로 보이는 언론의 기사에 영부인과 영애의 환담이 등장한다. ‘대통령 영부인’ 김건희 여사가 한국을 방문한 이탈리아 ‘대통령의 영애’ 마타렐라 여사를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는 내용이다. 

언어의 뜻 또는 속뜻에 관해 사려(思慮)를 지닌 언론사(언론인)의 경우는 꼼꼼한 검토를 거쳐 필요한 말을 선택한다. 그러나 상당수 언론들은 ‘영부인’은 대통령의 부인, ‘영애’는 대통령의 딸이라는 일종의 ‘용어’로 두 단어를 쓰고 있다. 

과거 ‘이순자 영부인’ ‘박근혜 영애’ ‘박지만 영식’과 같은 황당한 어법(語法)이 통용되던 기억이 있다. 令夫人(영부인)은 대통령 부인의 領夫人이고, 令愛(영애)는 대통령의 딸로 한정한 領愛, 令息(영식) 또한 領息이라는 뜻으로 (알고) 쓰는 것이다. 

비교적 단순한 착오 또는 오류지만, 말글의 선생 역할을 하는 언론이 이런 어법에 앞장서면 언어대중인 언중(言衆)의 어법도 하릴없이 그 오류에 휩쓸린다. 언론을 비롯한 ‘생산자의 언어’에는 좀 더 엄정한 기준과 통찰이 필요할 터다.

우리말의 기준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이다. 말이 헷갈릴 때는 이 사전을 찾으면 된다. 허나 이 사전의 이모저모를 살피면 아쉬운 대목이 ‘줄줄이 사탕’이다.

영애를 표준국어대사전은 ‘윗사람의 딸을 높여 이르는 말’이라고 했다. 규애 애옥 영교 영녀 영랑 영양 영원 옥녀 등의 한자어를 ‘비슷한 말’로 제시했다. 

틀렸다. ‘윗사람의 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딸’이 맞다. 상식의 문제다. ‘윗사람의 딸’은 ‘다른 사람의 딸’에 포함될 수는 있는 딸이겠다.

사전은 영식도 ‘윗사람의 아들을 높여 이르는 말’이라 했다. 영랑 영윤 영자 옥윤 윤군 윤옥 윤우 윤형 등의 한자어를 비슷한 말로 제시했다. 알바생을 잘못 골라 썼을까. 나라의 대표사전을 저렇게 만들다니...

또 영애나 영식 등의 한자어들, 우리말 ‘따님’ ‘아드님’의 한 방에 너끈히 ‘아웃’이다. 한자어라야 그럴싸하고 ‘있어 보인다’는 헛된 생각을 우리 국어사전은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다.

한국어사전이 우리 겨레와 우리나라 대한(大韓)에 어떤 의미인지 다시 새겨보자.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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