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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필의 돋보기] 국민의 적(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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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필의 돋보기] 국민의 적(敵)
  • 최승필 지방부국장
  • 승인 2024.03.17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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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필 지방부국장

“우리 속담에 ‘말하고 다니는 것’을 나팔 불고 다닌다고도 하나니, 사람 사람이 다 나팔이 있어 그 나팔을 불되 어떤 곡조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어떤 곡조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며, 어떤 곡조는 슬프게 하고, 어떤 곡조는 즐겁게 하며, 어떤 곡조는 화합하게 하고, 어떤 곡조는 다투게 하여 그에 따라 죄와 복의 길이 나누이게 되느니라”

소태산(少太山) 부처님의 법문(法門)에 나오는 말이다.

옛날 중국 북주(北周)에 하돈(賀敦)이라는 대장군이 있었다. 그는 전쟁터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웠지만 조정으로부터 받은 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사방에 불만을 터트리며 조정을 원망했다.

하돈은 결국 권세 높은 우문호(宇文護)로부터 미움을 사 자결해서 속죄하라는 명을 받게 된다.

뒤늦게 후회했지만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하돈은 아들 하약필(賀若弼)을 불러 “나는 입단속을 하지 못해 죽임을 당하게 됐다. 너는 앞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본 뒤에 입을 열어라”며 말한 뒤 자신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고, 평생 혀를 함부로 놀리지 말라는 뜻에서 송곳으로 아들의 혀를 찔렀다고 한다.

젊은 시절 불의를 참지 못하고 정직한 성격을 가졌던 하약필은 아버지의 유훈을 가슴에 새기며 조정에서도 남다른 명성을 떨쳤고, 수 문제(文帝)가 수나라를 수립하면서 개국공신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 역시 벼슬이 날로 높아지면서 교만해지기 시작했고, 파면까지 당하고 말았다.

그때 수 문제로부터 “너는 세 가지 지나침이 있다. 질투가 지나치고, 자만이 지나치고, 군주를 무시하는 게 지나치다”는 경고까지 받았지만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을 더 중용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늘어놓다가 결국 수 양제의 손에 처형당하게 이르렀다. 아버지의 전철을 밟고 만 것이다.

요즘 ‘질병은 입을 좇아 들어가고(病從口入), 화근은 입을 좇아 나온다(禍從口出)’는 말이 피부에 와닿는다. 입을 잘못 놀려 그 대가를 치르는 사례가 정치권에서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22대 총선을 20여 일 앞두고 ‘막말 리스크’가 총선 후보들에 대한 공천취소로 이어지는 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각각 ‘5·18 막말’과 ‘난교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도태우 변호사와 장예찬 전 최고위원을, 더불어민주당은 ‘지뢰 막말’로 논란이 된 정봉주 전 의원을, 개혁신당은 ‘소녀상 막말’로 물의를 빚은 이기원 후보의 공천을 철회했다.

도태우 변호사는 지난 2019년 2월 유튜브 영상을 통해 “(5·18 민주화운동에는)굉장히 문제적인 부분이 있고 북한의 개입 여부가 문제가 된다는 것이 사실은 상식”이라고 발언하는 등 5·18 민주화운동 폄훼 논란에 휘말렸다.

부산 수영 지역구에 공천을 받았던 정예찬 전 최고위원은 10여년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난교’ 발언에 이어 ‘동물병원을 폭파하고 싶다’, ‘(서울시민) 교양 수준이 일본인 발톱의 때만큼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까 싶다’ 등 원색적인 표현의 게시물을 올렸던 사실이 알려졌다.

정봉주 전 의원은 지난 2017년 7월 자신의 팟캐스트에서 평창동계올림픽과 관련, 북한 스키장 활용 방안을 놓고 패널들과 대화하다 “DMZ(비무장지대)에 멋진 거 있잖아요? 발목지뢰. DMZ에 들어가서 경품을 내는 거야. 발목지뢰 밟는 사람들한테 목발 하나씩 주는 거야”라고 말해 비난을 받았다.

이기원 후보는 2017년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통해 위안부 소녀상에 대해 “딸이나 손녀가 자기 어머니나 할머니가 강간당한 사실을 동네에 대자보 붙여놓고 역사를 기억하자고 하는 꼴”이라고 표현, 막말 논란에 휩싸였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언행을 한 경우 엄정 조치할 것을 천명한 바 있는 국민의힘은 도 변호사와 장 전 최고위원을 각각 지난 14일과 16일 공천을 취소했다.

민주당은 경선을 1위로 통과한 정 후보가 목함지뢰 피해 용사에 대한 거짓 사과 논란으로 국민께 심려를 끼쳤다며 당헌·당규에 따라 해당 선거구의 후보 재추천 절차를 결정했다.

개혁신당은 15일 서면브리핑을 통해 이 후보의 7년 전 과거 발언임을 감안, 공천을 의결했지만 온라인상에서 재조명되며 당의 명예가 실추되고 있다며, 공천을 취소한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 14일 세종전통시장에서 연설을 통해 “지금까지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가 ‘정치 잘했다, 나라 살림 잘했다. 살만하다, 견딜 만하다. 즐거운 마음으로 앞으로도 계속 더 많은 권한 줘서 나라 살림하게 해야 되겠다’ 싶으면 가서 열심히 2번(국민의힘)을 찍든지 아니면 집에서 쉬십시오. 집에서 쉬는 것도 2번을 찍는 것과 같다”고 말해 또 다른 막말 논란을 자초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박정하 중앙선대위 공보단장은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막말 속에는 국민을 갈라치는 저열함을 넘어 민주주의 파괴 위협”이라며 “공당의 대표이자 대선 후보였던 인물이 국민에게 ‘투표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선거의 의미 훼손이자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데 앞장선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비판했다.

또 “인천에서 ‘2찍’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고, ‘정중히 사과드린다’고 했던 말은 결국 허언이었음이 드러났다”고도 했다.

다산 정약용은 “지위가 높은 사람의 한마디는 아랫사람의 인생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좋은 말도 가려서 하고, 충고도 살펴서 하라.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박힌다. 뜻 없이 한 행동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말과 행동이 사려 깊지 못해 원망을 사고 재앙을 부른다”며, 항상 말을 조심할 것을 경고했다.

탈무드의 명언 중 ‘귀는 친구를 만들고 입은 적을 만든다’는 내용이 있다. 정치권은 아직도 막말 논란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의 막말’은 결국 국민을 적으로 만든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국매일신문] 최승필 지방부국장
choi_sp@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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