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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필리핀 야바난이 알려준 선교의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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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필리핀 야바난이 알려준 선교의 소중함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5.02.1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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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 국제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수원목양교회 나눔선교단의 일원으로 지난 1월 23일부터 28일까지 필리핀 민도로섬으로 선교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나눔선교단은 건축전문가와 한식전문세프, 한국어 강좌 외 문학 특강을 위한 전도사(傳道師)를 포함해 12명이 함께 했다. 수원목양교회는 민도로섬 ‘야바난 선교문화센터’에 선교사를 파송했는데, 이번이 2022년에 이어 세 번째 야바난지역 나눔선교활동이다.

야바난 선교문화센터로 가는 험난한 여정

필리핀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른 아침 찬 공기를 가르며 4시간여 비행 끝에 현지 시각 오전 11시 20분. 마닐라 나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한국의 무더운 여름 날씨와 같은 32℃의 기온에 습기가 오르며 숨을 가로막았다.

밖으로 나오니 민도로섬 야바난 선교문화센터 현지 선교사 두 분이 마중 나왔다. 고속도로를 2시간 달려 민도로섬으로 가는 바탕가스항(Batangas Port)에 오후 2시 도착했다. 민도로섬 아브라데일라항(Avradalea Port)에 가는 여객선이 4시에 출발한다. 시간이 남아 항만 휴게실에서 준비한 햄버거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2시간 항해 끝에 아브라데일라항구에 닿으니, 벌써 땅거미가 깔려 으슥한 6시가 되었다.

다시 차를 타고 비포장 산악도로로 2시간 남짓 가야 한단다. 우리 일행은 잠시 쉴 틈도 없이 어둠을 헤치며, 울퉁불퉁하고 구불구불한 비포장의 흙먼지가 뽀얀 민도로섬 산길을 달렸다. 1시간 정도 가니 다리 위에서 내리란다. 다리가 완공되지 않고 중간이 끊겨 있었다. 다리 위에서 철근으로 이리저리 뒤얽힌 사다리를 타고 9m 정도 내려오니 또 다른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차를 옮겨 타고 덩컹 덜컹 부딪치며, 한치도 안 보이는 칠흑 같은 산길을 1시간 이상 달렸다.

저녁 8시에 도착한 곳은 산 중턱 캄캄한 도로 위였다. 핸드폰 후래쉬를 비춰가며 좁은 산골짜기 길을 따라 조심스레 300m 정도 내려가니, 작은 마을 가운데 붉은 십자가가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바로 이곳이 ‘야바난 선교문화센터’였다. 사방에서 개들이 모여들어 꼬리를 흔들며 반겨준다. 짐을 풀고 교회에서 도착 예배를 드렸다. 야바난 선교문화센터는 이 지역에서 최고로 현대화된 50평의 교회를 겸한 문화센터와 20평 규모의 숙박시설이 3개가 있다. 1,000평의 정원 안에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다.

태풍이 오면 사라지는 야바난지역 주민들의 집

민도로섬(Mindoro)은 필리핀에서 일곱 번째로 큰 섬(10,572km²)이다. 경기도 면적만 한 섬에 140만 명이 거주한다. 고대의 중국 상인은 이곳을 ‘마이(摩逸)’라 했고, 스페인 사람들은 이곳을 ‘금광’을 뜻하는 ‘미나 데 오로(Mina de Oro)’라고 불렀다. 태평양 전쟁 중에는 일본군이 이곳을 먼저 점령했다. 1944년 미군은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가 있는 루손섬을 탈환하기 위한 발판으로 민도로섬에 상륙해 일본군과 전투해 승리했다.

1950년까지는 섬 전체가 하나의 주(州)였으나, 현재는 서민도로주(Occidental Mindoro)와 동민도로주(Oriental Mindoro) 두 개의 주로 분할됐다. 두 주를 나누고 있는 것은 해발 2,500m가 넘는 산맥이며, 최고 높은 산은 할콘산으로 정상이 2,616m다. 섬 전체가 산악 지형으로 특히 야바난 선교문화센터가 있는 서부의 서민도로주는 교통이 불편한 오지(奧地)다.

민도로섬의 경제는 대부분 농림업에 의존한다. 쌀, 옥수수, 사탕수수, 땅콩 등의 작물과 감귤류, 바나나, 람부탄, 코코야자 등 많은 종류의 과일을 재배한다. 메기·젖빛고기· 틸라피아 등 물고기를 양식(養殖)하며, 소·돼지·닭·오리 등을 사육한다. 대리석과 구리광산도 있다.

연평균 강수량이 3,000mm 이상으로 비가 많이 내리며, 태풍이 1년에 24개 이상이 발생해 엄청난 피해를 준다. 주요 종교는 기독교이다. 그러나 산악지대에 있는 여덟 부족의 소수 민족인 망얀족은 애니미즘(Animism)을 따른다. 모든 만물과 자연에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숭배하는 사상을 갖고 있다.

이번에 나눔선교지인 야바난은 민도로섬내서도 가장 낙후된 곳이다. 산기슭에 있고 바다와 접해 있는 산간어촌마을이다. 전체 81가구에 349명의 원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집들은 대다수가 야자수잎으로 지붕을 덮고, 둘러싸여 있다. 이 지역은 특별히 수많은 태풍의 영향권에 있어 태풍이 오면 집이 날아가곤 한단다. 또한 폭염과 식수 부족, 질병, 야생동물의 기습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이다.

주민들은 대부분 산을 무대로 야자수 농장에서 일하거나 버섯과 산채 등을 채취해 수집상에게 판매하며 살고 있다. 집집이 몇 마리의 닭을 길러 달걀을 생산해 반찬으로 먹는 것이 최고의 요리다. 먹거리가 부족하고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개를 많이 기르고 사랑한다. 개의 개체는 자연히 늘어날 뿐 개를 도살하지 않는다고 한다.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해 개들은 모두 깡말라 있다.

잡채, 비누, 구급약 전하며 선교활동

야바난 선교문화센터는 이 지역에서 가장 좋은 교회이자 주민들의 쉼터다. 어린이에게는 놀이터이고, 청소년에게는 문화공간으로 기타, 드럼 등 악기를 배우며, 주민들은 우물을 이용해 빨래와 몸을 씻기도 하고 먹을 물을 길어갈 수 있는 최고의 삶의 중심적 공간이다.

둘째 날 1월 24일부터 28일까지 4일간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까지 야생동물 침입을 막기 위한 울타리 조성작업을 했다. 400m에 이르는 둘레에 2.5m 간격으로 기둥을 세우고, 기초(基礎)하고 벽돌 쌓을 부분을 폭 40cm, 깊이 40cm로 팠다. 주변의 나무를 자르고 뿌리를 캐내는 일은 32℃가 넘는 땡볕 아래 힘들었다. 파내야 하는 흙에는 많은 돌이 섞여 있어 곡괭이로 찍어내고, 곳곳에 돌덩어리를 오함마로 깨는 난공사였다.

셋째 날 1월 25일과 26일. 양 이틀간은 야바난지역 200명의 주민에게 잡채에 닭고기와 밥을 곁들인 급식을 제공했다. 잡채는 조선시대 궁중요리이자 잔칫상, 명절상, 생일상 등 소중한 날에 올라가는 전통 K-푸드다. 중화권이나 동남아시아, 유럽 등지에서도 즐겨 먹는 귀한 요리다. 특히 파독 광부 간호사들이 독일인을 대접할 때 가장 좋은 반응과 가장 먼저 빈 접시가 나오는 게 잡채일 정도로 해외에서도 아주 인기 많은 한식 반찬이라는 점에서 선택했다.

나눔선교단은 맛있는 잡채 요리를 위한 특별강좌까지 수강하며 준비했다. 이번에 선보인 잡채는 고기, 버섯, 양파, 시금치 등의 재료를 잘게 썰어 볶은 것에, 삶은 당면의 물기를 빼고 간장과 참기름을 넣어 버무려 쫄깃한 한국의 풍미를 접시 위에 가득 담아냈다. 여기에 닭고기와 밥을 한 대접 가득 나누어 주었다. 주는 손길 받는 손길이 너무 아름답고 흐뭇했다.

그런데 10여 명의 아이들이 먹지 않고 주저하고 있었다. 왜 안 먹느냐고 물어보니 동생이, 엄마가 아파 못 왔다며 집에 가서 함께 먹겠다는 것이었다. 아이고 갸륵한 아이들. “꼬마야 먹어, 집에 가지고 갈 것은 따로 챙겨 줄 테니....” 그래도 애들은 머뭇 머뭇거렸다. 재차 “빨리 먹어” 그랬더니 먹기 시작했다. 식사가 끝난 그들에게 남은 식재료로 추가 조리해 듬뿍듬뿍 담아 나누어주니 우리 모두의 마음이 가벼워졌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이들에게 비누, 칫솔, 치약 등 생활 위생용품 200세트를 나눠줬다. 이들에게 비누와 치약은 귀중품에 가까울 정도로 소중하다고 한다. 며칠이 지나도 그들은 비누가 향이 너무 좋아 쓰지 않고, 냄새를 맡으며 보기만 하고 있단다.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비누, 치약, 칫솔 같은 필수품은 그들에게는 사치품으로 여겨질 정도의 문화적 차이를 보인다.

응급환자 발생에 대비해 이곳 야바난 선교문화센터에 구급약품을 비치해 치료해주도록 소화제, 지사제, 두통약, 감기약, 멀미약, 상처 연고, 밴드, 파스, 모기약 등 구급약품을 전달했다. 이 지역은 물론 민도로섬 전체에서도 병원과 약을 구하기 어렵다. 의사의 진료를 받으려면 마닐라로 배를 타고 가야 한다. 보통 8시간 이상이 걸린다. 태풍과 센바람이 불어 배를 타지 못하는 날도 많다. 또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조차도 어렵다.

수원목양교회 지원으로 건축 중인 교회 문화교육센터 마무리 공사에도 참여했다. 기존건물에 니스칠 작업과 주변 환경정리를 말끔히 했다. 새로 증축하는 이 건물은 교회 겸 문화교육시설로 지난해 3월 160㎡(약 50평) 규모로 착공했으며 올 2월 말 완공한다. 나눔 봉사활동에 이어 수원목양교회 전도사의 설교와 한국어 강좌 등 다양한 문화 특강도 매일 진행하며 현지 아동과 주민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펼쳤다.

우물 파기로 지역 주민들에게 식수 공급

야바난지역에는 유일하게 전교생 59명이 재학하고 있는 초등학교가 한 곳 있다. 이 학교는 필리핀 문교부에서 학교시설 부근에 우물을 지원했으나 너무 얕게 시공하고, 팬데믹(Pandemic) 기간에 우물이 막혀 사용이 불가한 상태였다. 예산 부족으로 재시공이 불가한 상황이어서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식수 및 일반생활용수를 전혀 공급받지 못하고 있었다. 여름에는 최고 45℃ 이상 온도가 올라 학생들이 수업 도중 탈수 증세 뿐 아니라 기절하는 사태도 발생하여 휴교하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실정을 안 김포국제로타리클럽(김포RC, 김포중앙RC, 김포금빛RC)에서 2024년 이 학교 아이들에게 맑은 물을 먹이기 위한 우물 파기와 식수대 설치, 교실 증축, 책걸상 교체 등을 지원해 주었다. 야바난지역은 공용우물이 3개가 존재하고 그중 1개는 제대로 물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아 전체 주민이 심각한 물 부족을 겪고 있었는데, 학교에 설치한 우물로 지역 주민들에게도 식수 및 생활용수 공급이 가능해졌다. 야바난지역의 주민들은 대한민국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가 대단했다.

필리핀 나눔선교 활동을 마친 1월 28일 어둠이 깔린 저녁 필리핀 마닐라 공항을 이륙했다. 밤하늘 아래에서 본 필리핀 마닐라는 희미한 불빛 몇 개 보이면서 멀리멀리 사라졌다. 눈을 지그시 감으니 열악한 환경에서 맨발로 순박하게 살아가는 영롱한 그들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가슴 저리게 스치어간다. 어느덧 깊은 밤 11시 45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필리핀은 1946년 식민 지배에서 독립한 어려운 국내 실정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7,420명을 파병했다. 이는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에 파병한 국가 중 5번째로 숫자가 많은 규모다. 6·25 전쟁 당시 치열하기로 유명한 연천 율동 전투 등에서 큰 공을 세웠다. 전쟁이 끝난 후에 다른 나라 군대는 철수했으나 그 이후에도 병력을 주둔시켜 정전협정에 큰 도움을 준 나라다.

필리핀은 1960년 단일 작목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미작연구소(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를 개설한 대표적 농업국가다. IRRI는 국제 식량난 해결을 위한 쌀과 관련된 품종과 기술을 개발 보급하는 곳으로 우리에겐 친숙한 공간이다. 1970년대 우리나라의 ‘보릿고개’를 해결한 통일벼(IR667)가 바로 여기에서 개발됐다.

야바난지역이 준 큰 과제. 태풍에도 견디는 집. 지원해야

귀국했지만 야바난지역은 나에게 큰 과제를 줬다. 지역 주민들의 집 문제다. 조금 있으면 수많은 태풍이 불어 주민들의 집이 날아갈 것이다. 젊은이 사는 집은 다시 주어서 복구라도 한다지만, 할머니와 어린 손자만 사는 집은 난감하다. 어떻게 할까 생각만 해도 앞이 깜깜하다. 특히 이 지역은 산과 바다가 접해 있어 태풍의 세기가 다른 지역보다 훨씬 강하다.

이들은 6평 남짓 면적에 바닥으로부터 1m 높이 벽돌을 쌓아 마루를 놓고, 지붕이 날아가지 않도록 그 위에 생철지붕을 고정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1채당 비용이 150만 원 정도 들어간다고 한다. 나는 수원목양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이들의 주거환경개선(Happy Home)사업을 지원해 이들에게 희망을 주기로 했다.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평생을 살다 1995년 돌아가신 장기려 박사가 생각난다. 장기려 박사는 많은 기독교인의 롤 모델이자 존경받는 대한민국의 의사였다. 환자에게 “제가 밤에 뒷문을 열어 놓을 테니 집으로 가세요.” 장기려 박사는 어느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 막막해할 때 이를 눈치채고 병원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가게 배려해 주었다.

또 “이 환자에게는 닭 두 마리 값을 내주시오." 병이 나으려면 무엇보다 잘 먹어야 한다며 원무과 직원에게 장기려 박사가 써준 처방전이다. 그는 평생 의사로 지내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에게는 방 한 칸이 없었다. 자신의 소유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제2의, 제3의 장기려 박사님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대한민국은 지구촌에서 귀감(龜鑑)이 되는 멋진 나라가 될 것이다. 이번 야바난 나눔선교는 하나님과 동행한 보람차고 소중한 행복이었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문제열 국제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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