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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화순의 나물이야기] 조상들의 지혜가 현대에 빛을 발하다-봄나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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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화순의 나물이야기] 조상들의 지혜가 현대에 빛을 발하다-봄나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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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5.03.1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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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화순 대한민국전통식품명인 남양주시 하늘농가 대표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겨우내 얼었던 대지를 뚫고 솟아나는 봄의 새싹은 겨울의 움츠렸던 기운을 흠뻑 북돋아 준다. 얼었던 강물이 풀리고,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도 어느새 지났다. 대자연의 신비는 참신한 생명력을 약동케 한다. 산 따라 물 따라 산해진미(山海珍味)를 찾아 먹는 봄의 변화를 요즘 새삼 몸소 느낀다.

경칩이 지나니 산과 들에서는 지난 추위에 땅속에 웅크렸던 새로운 생명이 움튼다. 첫 번째 선물이 양분을 듬뿍 머금은 산나물이다. 냉이, 고사리, 취, 참나물, 다래순, 쑥, 미나리, 두릅, 씀바귀, 달래 등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나물이 민족의 먹거리였다. 봄만 되면 아낙네들이 산과 들에서 바구니를 끼고 나물을 뜯는다. 반만년 보릿고개를 나물로 연명하며 넘었다. 부족한 비타민과 무기질도 나물에서 얻었다. 우리 식문화는 나물의 대장정이었다.

새봄의 기운이 서서히 밀려들면서 우리 신체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서는 충분한 양의 비타민이 필요하다. 겨울 동안 신선한 채소를 섭취할 기회가 적었기에 갑자기 몸의 활동기가 다가오면서 비타민 부족으로 졸음이 오고 식욕이 떨어지는 등 여러 가지 증상들이 나타난다. 따라서 봄철에는 신진대사를 돕는 필수 영양소인 비타민을 많이 먹어야 한다. 비타민이 많이 들어 있는 봄철 식품으로 가장 좋은 것은 새순 나물이다.

​조상들은 봄에 문턱에 들어서며 다섯 가지 봄나물인 오신채(五辛菜)를 먹었다. 오신채는 이른 봄에 나는 다섯 가지 나물을 일컫는다. 대체로 자극성이 강하고 매운맛이 나는 향채 나물을 먹으며 겨우내 결핍됐던 신선한 채소를 보충하고 자칫 잃기 쉬운 봄철 입맛을 돋우었다. 궁중에서는 입춘 날이면 오신채로 차린 입춘오신반(立春五辛盤)을 임금에게 진상했다. ​다섯 가지 나물을 섞어 무쳐 먹음으로써 모든 것을 화합하고 융합하여 임금을 중심으로 하나로 뭉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겨우내 움츠린 몸과 마음의 기지개를 펴는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서민들도 입춘이 되면 절식으로 오신채를 먹었다. 이때 오신채를 먹어야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갖춘다고 믿었다. 따라서 입춘날 오신채를 먹으면 이 다섯 가지 덕을 모두 갖추게 되고 신체의 모든 기관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건강해진다고 믿었다. 또한 다섯 가지 맛의 오신채를 먹으면 인생에 있어 다섯 가지 고통을 깨닫는다고 여겼다.

​이른 봄 햇나물 무침인 오신반에 들어가는 다섯 가지 나물은 시대와 지방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달래, 냉이, 씀바귀, 미나리, 부추 등이다. 달래는 ‘산에서 자라는 마늘’이라는 뜻으로 ‘산산(山蒜)’라 한다. 특유의 톡 쏘는 매운맛을 내는 ‘알리신’ 성분이 함유돼 있어 혈액 순환을 도와 심혈관 질환 예방에 효과적이다. 간장, 참기름과 함께 만든 달래장은 밥에 쓱쓱 비벼 먹으면 봄철 입맛을 돋는 최고의 요리다. 냉이는 비타민A를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어 눈의 피로를 덜어주고 야맹증과 안구 건조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 아울러 지혈 작용에도 효과가 커 생리불순, 코피, 산후 출혈 예방에 효능이 있다.

씀바귀는 체내 열을 내리고 독소를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실제 씀바귀에 다량 함유된 ‘이눌린’은 위액 분비를 촉진해 소화를 돕고 위를 건강하게 한다. 특히 봄철 춘곤증 완화에 효과가 크다. 미나리는 찬 성질이며 물을 많이 담고 있는 약초다. 체내 독소를 해소하고 열을 내리는 데 유용하다. 이뇨작용을 촉진해 몸의 노폐물을 배출하고, 체내 수분 균형을 유지하는 효능도 있다. 또한 암세포 성장을 억제해 대장암 및 폐암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부추는 양기를 강화하는 대표적인 채소로 남성 건강에 좋다. 비타민 B군과 비타민C가 풍부해 피로회복과 혈액순환에 효과적이다. 아울러 부추에 풍부한 항산화 성분은 신체 노화를 방지하고 면역력을 높여준다.

선조들의 지혜로 이어온 우리의 나물이 빛을 발하는 봄날이 왔다. 최근 한 채식주의자의 인터뷰를 보게 됐는데 우리나라가 채식주의자들의 천국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온갖 나물과 두부를 즐겨 먹는 우리 조상의 식습관 덕분에 아무런 어려움 없이 채식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먹을 것이 없어서 산나물로 버티던 조상들의 지혜가 오늘날 건강식이 된 현실을 보면 정말 세상일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우리나라의 제철 나물은 본연의 맛을 살리면서 건강까지 챙길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고 실제로 주목받고 있다. 소화가 안 되고 화장실을 못가서 불편한 분들에게 고기 대신 봄나물을 권해본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고화순 대한민국전통식품명인 남양주시 하늘농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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