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필리핀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254달러로 아시아에서 일본(478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당시 한국은 158달러에 불과했다. 작년 기준 양국의 경제력은 한국 3만4994달러(세계 26위), 필리핀 3687달러(세계 124위)로 비교 자체가 안 된다. 세계 순위를 감안하면 필리핀의 국력은 60년 동안 엄청나게 퇴보했다. 가장 큰 이유는 150여 개에 불과한 족벌 세력이 국가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봉건적 사회 구조 탓이다.
필리핀은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300년 이상을 군림한 지주 계급이 독립 후에도 그대로 존속했다. 토지개혁이 무산되며 대규모 농장을 계속 갖게 된 지주 계급은 농업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주는 대가로 정치권력마저 쥐었다. 이런 후견주의(클리엔털리즘)로 인한 극단적 양극화가 나라를 쇠락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이번 대선으로 단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인물은 새 대통령 마르코스의 모친인 ‘사치의 여왕’ 이멜다 마르코스(92)다.그의 호사를 얘기할 때면 구두 3000켤레 외에도 유명 브랜드 팬티 3500장도 종종 입방아에 오른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권불십년(權不十年)·남가일몽(南柯一夢) 아니었던가!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가 하와이로 망명한 후 그가 살던 집안에는 아내 이멜다가 사용하던 창고가 별도로 있었는데 한 번도 같은 구두를 신은 적이 없다는 구두 3000켤레·수 백개의 명품 백·장신구 등이 수두룩하게 쏟아져 나왔다. ‘독재자 마르코스는 용서할 수 있어도 사치의 화신 이멜다는 용서할 수 없다’고 치를 떨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내의를 기워 입으면서 생활했고 최규하 대통령 부인 홍기 여사는 연탄을 갈아가면서 생활했으며 현대를 창업했던 정주영 회장은 소 500마리를 몰고 북한에 갔을 때 신은 구두가 7년 동안 신어서 뒷굽이 비딱하게 달은 신발이었다.
중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지도자 전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총리 주은래(周恩來:1898~1976)는 퇴임 후 고향 집으로 돌아갔는데 천정에서 물이 새어 수리하려고 하니 우리 돈 60만 원이 필요하였으나 돈이 없어 수리조차 하지 못하고 생활했으며 세종 조에 유관(柳寬:1346~1433)이라는 영의정이 있었다.
그는 삼간 모옥(茅屋)에서 살 만큼 청렴결백하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방 안에서 우산을 받쳐 들고 책을 읽었다. 그의 아내인 정경부인은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몸소 바느질을 해야 할 정도로 가난했다. 우산을 쓰고 책을 읽던 유관은 측은하기 한량없는 지어미 정경부인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부인, 오늘같이 비가 많이 오는 날에 우산이 없는 집에서는 어찌 지낼꼬?” 오늘날의 고위 공직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일화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의상비에 대한 정보공개 여부가 얼마전 세간의 화제됐다. ‘의전비용을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이 있었지만 불복했다. 이유는 ‘국익을 현저히 해친다’고 했다. 법원은‘국익을 해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비서관의 해명은 “의류와 장신구는 5년간 일관되게 사비로, 즉 카드로 구매했다”고 했는데, 부인에게 한복과 구두를 판매한 측은 “봉투에 든 현금으로 받았다”고 했다. 국익을 해칠 일을 왜 했을까? 이장폐천(以掌蔽天), 즉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기 아닌가?
얼마 전 끝난 필리핀 대선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전 상원의원이 당선됐다. 그는 지난 1965년부터 1986년까지 장기 집권한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이다. 그의 선친은 정권을 잡은 뒤 7년이 지난 1972년부터 1981년까지 계엄령을 선포해 수천 명의 반대파를 체포해 고문하고 살해하는 등 독재자로서 악명을 떨쳤다.
부정축재도 일삼았다.마르코스 대통령 집권 기간 국고에서 빼돌린 재산은 100억달러(12조7000억원)로 추산된다. 그의 아내인 이멜다는 남편의 대통령 재임 기간에 보석, 명품 옷 등을 마구 사들여 ‘사치의 여왕’으로 불렸다. 뿐만 아니라 메트로 마닐라 주지사, 주택환경부 장관 등 요직을 맡아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마르코스 일가는 1986년 민주화 세력에 의한 ‘피플파워’로 권좌에서 물러났다. 시위대가 대통령궁을 습격했을 당시 3000켤레가 넘는 이멜다의 명품 신발 컬렉션이 해외토픽을 장식했다.
거액을 부정축재한 독재자 가문이 시민들에 의해 쫓겨난 뒤 36년 만에 다시 정권을 잡게 된 것은 독재를 경험한 적이 없는 젊은 층의 지지에 기인한다. 마르코스의 선친이 권좌에 있던 시절에 태어나지 않았던 젊은 유권자들과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적극 소통하면서 암울했던 과거를 미화하는 혹세무민 선거전략이 주효했다.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정의롭고 진취적이어야할 젊은 층이 나라를 망친 독재자의 아들을 선택했다니 아이러니하다.
국내외 언론은 마르코스의 당선을 ‘독재자 가문의 귀환’이라는 타이틀로 보도하고, 그의 이름 앞에 ‘독재자의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민주주의가 성숙 안된 정치 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라는 비아냥의 의미를 담고 있다. 36년 전 마르코스 일가를 몰아냈던 필리핀의 ‘피플 파워’ 혁명은 아시아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반(反·반대함)독재 시위 도미노에도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오랜 경기침체와 빈곤, 정치 혼란에 필리핀인들도 지쳐가는 걸까. 마르코스와 이멜다가 36년 전 ‘피플 파워’로 쫓겨나 미 공군기로 하와이로 망명갈 때 챙겨간 현금만 7억달러가 넘는다. 필리핀 사람들은 어찌 그리 쉽게 잊는지 모르겠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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