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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제2·제3의 우장춘 박사가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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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제2·제3의 우장춘 박사가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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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8.0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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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수원시 서둔동에 위치한 여기산에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禹長春;1898~1959) 박사의 묘지가 있다. 우장춘 박사는 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우리나라 육종학의 황무지를 개척한 시대의 영웅이다. 불과 9년 5개월이란 짧은 기간을 조국에서 살았지만 그가 남긴 발자국은 우리나라 농업발전에 대전환을 이뤘다.

우 박사는 1898년 도쿄에서 한국인 아버지 우범선과 일본인 어머니 사카이 사이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이 되던 해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함께 어렵게 성장했는데 혼혈이라는 이유로 또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일본인 어머니는 항상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 말고 “밟혀도 죽지 않고 예쁜 꽃을 피우는 민들레처럼 꿋꿋하게 자라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1919년 도쿄제국대학교 농학실과를 졸업하고 일본 농림성 산하 농사시험장 기술 관리로 들어갔다. 1930년 겹꽃 피튜니아의 육종 합성에 성공해 다윈의 진화론을 수정하고, 1936년 다윈의 ‘진화론’을 수정한 ‘종(種)의 합성(合成)’이라는 논문으로 도쿄제국대학교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같은 종(種)끼리만 교배가 가능하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었지만 우 박사는 종(種)은 달라도 같은 속(屬)의 식물을 교배하면 전혀 새로운 식물을 만들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 이론은 세계 육종학 교과서에도 인용되었다.

광복을 맞이하자 이미 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손꼽히던 우장춘 박사를 모시기 위한 ‘우장춘 박사 한국추진위원회’가 결성됐다. 평소 인생의 절반은 어머니 나라에서 나머지 절반은 아버지 나라에서 살고자 했던 우 박사는 마침내 1950년 3월 8일 일본인 어머니와 아내, 자식을 일본에 남겨둔 채 홀로 고국으로 왔다. 6․25전쟁 중엔 대한민국 해군 정훈장교로 임관해 소령으로 전역하기도 했다. 전역 후 부산 동래의 한국농업과학연구소 초대 소장을 맡았다.

우 박사는 ‘씨 없는 수박’을 처음 만든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지만 씨 없는 수박을 처음 만든 주인공은 우 박사와 친분이 있던 교토제국대학 기하라 히토시(木原均; 1893~1986) 박사다. 우 박사는 일본에서 돌아온 뒤 1953년 씨 없는 수박의 시범 재배에 들어가 1955년 ‘씨 없는 수박 시식회’를 열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씨 없는 수박을 선보였기에 사람들은 우 박사가 씨 없는 수박을 최초로 만든 사람으로 여긴 것이다.

우 박사는 1953년 국립중앙원예기술원 원장을 맡아 제주도는 기후가 온화해 감귤과 유채재배가 쉽다며 적극 보급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감귤 생산지와 아름다운 유채밭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1954년엔 우리나라 풍토에 맞고 맛이 좋으며 병에 강한 무와 배추의 새 품종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길쭉했던 토종배추가 지금과 같이 통통한 배추로 바뀐 시기다. 품종 개량으로 1957년부터는 국내 자급이 가능하게 됐다. 1958년에는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됐던 강원도 감자의 품종을 개량해 맛 좋고 튼튼한 무병 감자를 생산했다. 무병 감자는 6․25전쟁 이후 식량난을 해결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우 박사는 농림부장관직 제의도 거절하면서 오로지 종자 개발에만 헌신했다. 늘 고무신을 신고 있어 ‘고무신 박사’로도 불렸다. 우리나라 근대 농업을 개척한 공적을 인정받아 1959년 8월 7일 병상에서 건국 이래 두 번째로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받았다. 3일 뒤인 8월 10일 당시 진행 중이던 벼 연구를 염두에 둔 듯 “이 벼의 끝을 보지 못하고 내가 죽어야 하다니”라는 말을 남기고 향년 61세로 영면하셨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식량안보와 주권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졌다. 종자산업 육성은 식량주권의 핵심사업이다. 최근 4차산업혁명과 생명공학기술의 발달로 디지털육종 시대를 맞았다. 인공지능과 생명공학기술을 융합해 기존 방법보다 최대 100배 정도 고품질, 고효율 우수종자를 개발할 수 있다고 한다. 제2, 제3의 우장춘 박사가 많이 나와 세계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종자 강국이 되었으면 한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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