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익의 시선] 학교교육의 균형발전방안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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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익의 시선] 학교교육의 균형발전방안을 말하다
  • 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 승인 2021.06.0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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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보편교육의 실현

대한민국 교육의 문제는 고질적이다. 한 마디로 방법이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교육은 해방 이후 모든 국민에게 보다 많은 교육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었으며 전반적으로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은 세계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러면 그동안 국가에 의해 제시되었던 교육목표를 살펴보자.

ㆍ자주성, 생산성, 유용성 강조, 민주시민, 자주적 국민, 지식, 경제적 능력, 건강한 심신, 심미적 정서, 도덕성
ㆍ국가주의적, 인간주의적, 발전주의적 교육이념
ㆍ건강한 사람, 심미적인 사람, 능력있는 사람, 도덕적인 사람, 자주적인 사람
ㆍ전인적 성장의 기반 위에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
ㆍ21세기의 세계화∙정보화 시대를 주도할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한국인 육성

우리는 과연 이러한 화려한 수식어로 장식되어진 교육목표와 이념을 실현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담을 수 있는 교육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것일까? 그 답은 ‘아니다’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모든 교육이 결과적으로 대학입시에 집중되어 있고, 상대평가에 의한 ‘줄 세우기’와 ‘1등 만들기’라는 덫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우리 국민 모두는 이러한 함정에 빠져 있다. 이러한 방식이 쉽고 명료할 뿐만 아니라 경쟁적 구조가 만드는 결과론적인 가시적 성과가 분명한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답은 간단할 수 있다. 원칙에 충실한 것이다. ‘교육의 기회는 누구나 동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는 보편교육의 원칙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미래교육을 위한 ‘교육과정에 대한 획일성의 탈피’와 ‘다양성과 자율교육과정의 확대’이다. 상위 10%에 맞춰진 교육과정이 하위 90%를 위한 교육인 양 포장되어진 획일화된 현 교육과정에 대한 전면 수정이 필요한 것이다.

대학입시전형의 개방적 운영이 우선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대학은 학령인구(18-22세)대비 2000년 85%, 2010년 111%로 보편교육기관으로 자리하고 있다. 사실상 90%에 해당하는 대학은 입시전형에 변별력이 크게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소위 명문대학이라는 상위 10%에 대한 선호대학의 입시전형이 국민의 관심 대상이라는 현실을 전부의 문제로 일반화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하여 초·중·고 교육이 정상화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고등학교 교육은 주요 남ㆍ여 인문계고등학교와 외고 등의 특수고등학교를 중심으로 모든 교육과정이 입시 중심으로 실행되고 있다. 또한, 전체 고등학생 중 10%만이 소위 명문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고입입시제도가 중학교 내신 성적의 줄 세우기를 다시 만들고 더 나아가 초등학교 교육조차도 이러한 상위 10%의 함정에 빠져 들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반복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렇게 치열한 경쟁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이다. 상위 10%의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90%의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자격지심을 심어주는 교육이 사회정의가 될 수는 결코 없는 것이다. 이제는 사교육을 통해 선행학습을 필요로 할 정도의 많은 교과목과 교육수준만을 고집해서도 안 된다. 알아야 할 것을 국가가 정하고 이를 강요하는 교육은 결국 아이들이 인생을 살아가며 정작 배워야할 것은 놓치고 있음을 우리 국민 모두는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감한 시도가 필요하다. 상위 10%의 대학을 각 시도별로 대학원 중심과정으로 편성하고 학사과정을 과감히 확대할 필요가 있다. 대학교육의 전면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대학에서 전공을 선택하여 스스로 필요한 석·박사 과정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대학과 대학원의 교육과정이 나이와 상관없이 선택이 가능할 수 있도록 야간강좌 및 인터넷 강좌를 통한 학위취득이 가능하게 하여 평생교육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의 결과는 스스로 깨우치는 능력을 배양시키는 것이다. 또래 집단과 맨토가 한데 어우러진 사회집단. 그 자체만으로도 교육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력평가는 그 수를 연 2회로 제한하여 최소화하고 그 목적은 최소한의 기준 학력 달성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만 실시하여 학력 우수자의 변별이 가능한 상위 10%의 성적만 공개하면 된다.

학교별 균형발전이 또한 중요하다. 학교의 차이는 사실상 인위적인 서열로 만들어진 결과이다. 과거 교육정보와 교사의 부족 등 외부적인 교육환경의 차이가 지역별 격차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그렇지가 않다. 고교과정까지는 자신의 지역에서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한 국가지원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세워졌던 실업학교를 일반교육과정으로 전환하고 체험교육 위주의 교과과정 편성과 다양한 수업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학생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교육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가능할 수 있는 교사의 역량을 강화하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학교 교육에서 ‘1등의 개념’을 없애야 한다. 청소년에게 지식과 기술의 습득 과정이 성취에 대한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우치게 하는 것이 교육의 실질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 초등교육의 수준은 많은 발전을 하고 있다. 그러나, 중등교육의 함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여 그러한 교육목표의 연계성을 상실하고 있는 분명한 현실은 학부모의 과도한 욕심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영재나 수재의 교육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도 있다. 이는 초등교육에서 교과과정 중 일정한 기준에 맞춰 월반 제도를 채택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또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심화교육과정을 별도로 신설할 수도 있어야 한다.

우수한 영재교육이 또래집단에서의 우월감으로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그 동안 우수한 예·체능 인재도 배출하여 왔다. 이러한 성공은 기존의 학교 교육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여기서 힌트를 얻으면 답이 있다. 인문학, 과학, 언어, 문학, 음악, 미술, 체육 등 대학교와 연계하여 전문화된 교육과정을 일반 교육과정과 별도로 운영하면 된다. 그리고 이를 한문등급 국가자격시험과 같은 등급시험을 확대 실시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내에서 시행되는 영어국제학교 수준의 교과개혁이 필요하다. 청소년에게 국ㆍ영ㆍ수 중심의 어려운 학업수준을 모두에게 요구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교육 과목의 다양성 확보와 학생 선택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보편교육의 핵심은 등수를 매겨 학생 간 경쟁을 학습방법으로 이용하는 것을 근절시켜야 한다.

교육은 지적 탐구에 대한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교사는 지식탐구에 대한 경험의 과정과 지식을 통한 사유의 경험을 학생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교육은 가르치는 것이기 보다 지적 탐구의 과정을 함께 나눈다'는 교육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지적 탐구는 기능이나 기술처럼 숙련된 자가 미숙련자를 가르치는 일방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능을 가르치는 것 역시 숙련된 장인이 직접 시범을 보일 수 있어야 배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미숙함 속에서도 가까운 미래의 숙련된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그러한 기술과 기능에 가치를 부여하고 모든 작업과정 속에 삶의 철학을 담고자 한다. 숙련된 작업 과정에는 인내력과 집중력이 있어야만 하고 작업 중에 얻을 수 있는 평온함, 열정, 감정의 승화, 해탈 등과 같은 긍정적인 삶의 의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기술도 이러한 과정을 밟으면 예술로 승화되는 것이다. 역설적인 것은 '예술이라 일컬어지는 것들 또한 그 형식에만 치우치게 되면 하찮은 단순 기술에 불과할 수 있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학교교육이 기능적인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교사의 지적 탐구의 자세가 학생에게 전달되어져야 하고 그 과정에서 학생은 스스로 학습하는 자세의 가치와 목적을 배우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어린 시절부터 많은 학생들을 한 장소에 모아서 일정한 기간 동안 교육시킨다. 그리고 그 이유는 보다 많은 사람이 교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효율적인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에 있다. 이는 특정 권력층의 전유물이었던 과거사회와는 달리 현대사회가 추구하는 보편적인 사회발전에 기여한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사회발전이라 함은 인류가 이룬 발전의 산물들을 모두가 공평하게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한 국가에 국한되어진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가 공평해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교육은 함께 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심성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과거 일제의 압제와 해방에서의 혼란, 6.25전쟁 등 피폐했던 상황에서 '사회발전기반의 기본은 사람이다'라는 인식에서 출발하였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양적으로는 세계최고의 교육제도를 갖추게 되었다. 이제 대한민국의 교육제도는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음을 직시하고 인류발전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보편적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전국매일신문] 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waterwrap@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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