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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필의 돋보기] 진실의 잔을 받아먹고 따라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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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필의 돋보기] 진실의 잔을 받아먹고 따라주고 싶다
  • 최승필 지방부국장
  • 승인 2022.02.20 1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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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필 지방부국장

‘프레임의 법칙(Frame law)’은 똑같은 상황이라도 어떠한 틀을 갖고 상황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진다는 법칙이다.

지역 전통시장을 경유하는 한 버스는 늘 보따리를 든 승객들로 만원이었다. 어느 날 시장을 향해 가던 버스 안에서 갑자기 아기 울음소기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치겠지 했던 아이의 울음소리는 여러 정거장을 거쳤는데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슬슬 화가 난 승객들은 여기저기서 아이의 엄마에게 ‘아이를 잘 달래보라. 버스를 전세 냈나. 아줌마 내려서 택시 타고 가라. 여러 사람 힘들게 하지 말고...’라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항의했다.

이때 버스 기사가 잠시 차를 멈춘 뒤 문을 열고 나가 긴 막대사탕을 사 들고 들어와 우는 아이의 입에 물려주니 그제서야 아이는 울음을 그쳤고, 승객들의 원성도 사라졌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야 하는 아이 엄마는 버스 기사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손등에 다른 한 손을 세워 보였다. 수화로 ‘고맙습니다’ 라고 표현한 아이 엄마는 듣지고 말하지도 못하는 청각 장애인이었다.

아이 엄마가 내린 뒤에도 버스 기사는 이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동안 차량 불빛을 비추고 있어도 “빨리 갑시다”라고 말하는 버스 승객은 한 사람도 없었다.

한 선생님이 날마다 지각하는 학생에게 학교생활이 불성실하다며 회초리를 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 이 선생님이 출근하는 길에 우연히 늘 지각하는 이 학생을 발견하게 됐다.

한눈에 봐도 병색이 짙은 아버지가 타고 있던 휠체어를 밀고 요양시설로 들어가고 있었다.

학생은 요양원이 문을 여는 아침 시간에 맞춰 아버지를 모셔다드린 뒤 조금이라도 더 늦지 않게 학교로 달려왔던 것이었다.

그날 역시 지각을 한 학생은 선생님 앞으로 와 말없이 자신의 종아리를 걷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회초리를 학생의 손에 쥐어주며 자신의 종아리를 걷었다. “정말 미안하다...” 라며.

잘못된 판단을 당연한 것처럼 결정하는 비합리적인 판단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갈등으로 몰아간다.

더욱 심각한 것은 내 머릿속에서 고정관념으로 굳어진 것들은 어느새 프레임이 되고, 그 프레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그 범위에서만 모든 것을 생각하고 판단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번 제20대 대통령선거가 상대 후보에게 나쁜 이미지를 씌우려는 프레임 전략이 난무하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적폐청산 수사 의지를 보이자 더불어민주당은 이에 총공세를 펼치며 ‘정권교체=정치보복’ 프레임을 통해 지지층을 총 결집하고 있다.

민주당은 “마침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정치보복과 검찰공화국의 야욕을 낱낱이 드러냈다. 공당의 대선 후보가 보복정치를 하겠다고 노골적으로 얘기하는 자체가 충격적”며 “이 같은 불행을 막기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또, 이재명 후보도 목포 등 유세 현장을 찾아 윤 후보의 정치보복 발언을 거론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는 평생 핍박당하면서도 한 번도 정치보복을 입에 올린 일이 없고 통합의 정신을 실천했다”며 “어떻게 대통령 후보가 선거운동하면서 정치보복을 공언할 수가 있느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윤 후보는 “저 윤석열 사전에 정치보복이라는 단어는 없다. 이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대통령에 당선되면 어떠한 사정과 수사에도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지난 여름부터 말했다”고 했다.

윤 후보는 “부정부패는 정치보복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엉터리 프레임으로 위대한 국민을 현혹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 이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은 윤 후보의 ‘신천지 압수수색 거부’ 의혹에 대해서도 ‘주술에 의존하고 있다’는 프레임 전략을 앞세우고 있다.

윤 후보는 민주당을 향해 자기 죄는 덮고 남은 짓지도 않은 죄를 만들어서 선동하고, 이에 원래 파시스트들,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이 하는 수법이라고 반격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재명 후보 부인 김혜경씨의 ‘초밥 10인분 주문’ 논란이 ‘이재명 옆집’의 전선거운동 의혹으로 확산하면서 여야의 난타전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국민의힘 측에서는 경기주택도시공사(GH) 직원 합숙소가 이 후보의 불법 선거운동 캠프로 활용했다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은 명백한 허위사실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선은 정책경쟁은 사라졌다”고 지적하며, 진영 대결이 극심할수록 양측은 자기편을 결집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네거티브 전략을 쓰기 마련이라고 한다.

시인 김종구의 ‘술 마시는 법’은 진실한 인간관계에 대해 표현하고 있다.

‘나는 누구와 술을 마시더라도 그 사람 마음을 마시고 싶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나의 진실을 따라주고 싶다. 나는 그의 투명한 잔이고 싶고 속마음 털어주는 술이고 싶다. 안주는 인생의 소금 꽃이면 더욱 좋고, 오가는 입김 속에 가끔은 데워진 말로 부딪칠지라도 그것이 진실이라면 그의 잔 다 받아먹고 싶다. 또 그만큼 따라주고 싶다’

국민들은 후보자들로부터 진실의 잔을 받아먹고 싶다. 또 그만큼 따라주고 싶다. 그러나 무척 혼란스럽다.

[전국매일신문] 최승필 지방부국장
choi_sp@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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