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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울창하고 진귀한 보배같은 고장 울진을 다녀와서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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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울창하고 진귀한 보배같은 고장 울진을 다녀와서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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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9.19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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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7월 22일 금요일. 장맛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와는 달리 하늘은 푸르고 맑았다. 아침 9시. 우리 부부와 처남 내외가 울진이 고향인 왕년의 테니스 선수와 대한민국 전통식품명인 고화순씨의 안내를 받으며 1박 2일 일정으로 울진으로 향했다. 수원에서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강릉까지, 강릉에선 속초-동해고속도로로 동해시까지, 동해시부터는 36번 국도로 삼척을 거처 울진으로 330km에 이르는 여정이다.

잠깐 이번 여행의 안내자 고화순씨를 소개하고 얘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대한민국 전통식품명인 고화순씨는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7년 서울로 상경했다. 어릴 적부터 외할머니와 어머니를 따라 불영계곡 자락에서 고사리, 취나물, 두릅 등 자연산 나물을 채취하면서 나물을 손질하는 방법, 데쳐서 말리는 방법, 보관방법과 조리하는 방법 등을 배웠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을 기반으로 개인 식품회사에서 일하다가 2003년 경기도 남양주에 농업회사법인 하늘농가(주)를 설립했다. 이 기업은 나물류 전처리와 가공을 통해 학교급식납품, 일반시장공급, 수출 등을 하고 있다. 지역경제발전과 사회공헌에도 선봉자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고화순씨가 울진으로 우리를 안내한다니 개인의 삶이 살아 숨 쉬는 생생한 여행길이 될 것 같았다.

경기도 이천과 여주를 지날 때 초록의 들판이, 강원도 원주와 동해시까지 울창한 푸른 산, 동해시에서 삼척을 지나 경상북도 울진까지 가는 쪽빛 바다와 자연 풍경은 아름답기만 했다. 강원도 평창 대관령을 지날 때는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렇지만 짧은 시간이었다. 오히려 산 중턱에 머무른 검은 비구름은 한편의 산수화를 보는 것 같았다.

어느새 동해시에 들어섰다. 잠시 머물러 점심을 먹고 추암촛대바위를 들러 보았다. 동해시의 명소 추암촛대바위는 수중의 기암괴석(거북바위, 부부바위, 형제바위, 두꺼비바위, 코끼리바위 등)이 바다와 함께 어울려 빗어내는 비경은 신비에 가까웠다. 촛대바위는 애국가 첫 소절의 배경화면으로 유명하며 승천하는 용의 모습을 닮았다. 촛대처럼 생긴 절묘한 바위가 무리를 이루며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이어 좌측의 푸른 바다와 우측의 울창한 산을 보며 얼마나 달렸을까. 울진군 죽변항(竹邊港)에 도착했다. 죽변항의 스카이레일을 타고 봉수항까지 왕복 4.8km를 출렁이는 바다 위를 달렸다. 무인으로 천천히 달린다. 깨끗한 바다 물속의 해초도 보인다. 눈부시게 새파랗고 탁 트인 청정한 울진바다의 경치와 함께 청량한 바다 내음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언덕길을 올라 죽변마을 산벼랑 끝에 있는 SBS ‘폭풍속으로’ 드라마 촬영 세트장을 보았다. 폭풍 속으로 드라마는 고기잡이 아버지 밑에 자란 두 아들에게 다가온 운명적인 사랑과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드라마였다. 동해안의 한적한 마을이었던 죽변리가 이 드라마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많은 관광객이 찾는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드라마 세트장은 나지막한 산과 낭떠러지가 어우러진 경관이 너무 신비해 드라마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촬영지 내에는 동해와 어우러진 빼어난 비경을 보여주는 주인공의 집과 교회, 용의꿈길(해안데크), 전망대, 대나무 숲 등이 넓게 탁 트인 동해바다와 어우러져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낸다.

죽변항은 울진군 북단에 위치해 있으며 국가어항이다. 대나무가 많은 바닷가 또는 ‘대숲 끄트머리 마을’이라 하여 죽빈이라고 하다가 죽변이 됐다고 한다. 대체적으로 온난하고 연중 해류의 영향을 받아 한서(寒暑)의 차가 별로 없다. 15.6m 높이를 자랑하는 죽변 등대는 동해를 운항하는 배들의 길잡이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동해안에서 규모가 크기로 손꼽히는 이름난 어업전진기지로, 방파제 바닷길로도 유명하다. 죽변항 앞바다에서는 울진대게와 오징어․명태․정어리․가자미․고등어․꽁치 등이 많이 잡히고 미역도 유명하다. 다양한 어획량만큼이나 어항 주변에는 크고 작은 수산물 가공 공장들이 줄지어 있다.

죽변항은 직선거리로 울릉도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한때는 포경선들이 줄을 섰던 항구였다. 그런 연유로 죽변초등학교의 교문은 고래의 턱뼈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죽변항은 주변에 거느린 명소들도 많다. 덕천리 백사장으로부터 후정리와 죽변등대 남쪽의 봉평리, 그리고 온양리까지 이어지는 드넓은 백사장은 통틀어 봉평 해수욕장으로 부른다. 그 길이가 무려 10km에 이른다. 동해의 파란 물과 깨끗한 모래는 해수욕장으로 더할 나위 없다. 죽변에서 온양리에 이르는 4.4km 구간에는 봉평 신라비 비석거리와 전시관, 휴게소 등이 있어 잠시 차를 세우고 동해를 감상할 수도 있는 드라이브코스로도 좋다.

다음은 매화면 매화리 ‘이현세 만화벽화거리’로 발길을 옮겼다. 이 마을은 전통식품명인 고화순씨가 자란 고향이다. 마을에 들어서니 명인의 가족들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며 갓 수확한 햇감자까지 안겨준다. 명인의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 등 가족들은 농업에 종사하며 고향마을을 굳건히 지키고 계시다.

인사를 마치고 매화마을 골목길을 따라 만화를 보며 산책했다. 벽에는 이현세 만화의 대표작 ‘공포의 외인구단’을 비롯해 ‘창천 수호지’, ‘남벌’, ‘며느리 밥풀꽃’, ‘만화 삼국지’ 등 400여점이 그려져 있었다. 이현세 만화가의 고향은 포항이지만 아버지 고향이 이곳 매화면이다. 현재 조성된 이현세 만화벽화는 이미 출판된 만화작품을 탁본해 화가 안창회가 매화마을에 내려와 2017년 한 해 동안 그린 작품들이다. 면사무소 옆의 매화벽화로에서부터 시작되어 1km 정도를 돌아오니 5일 장 장터에서 끝이 난다.

이현세 벽화만화거리에서는 1970~80년대를 풍미한 ‘만화책 시대’ 감성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누구라도 길을 잃는다.’, ‘호기심이 없다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다.’,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와 같은 이현세 작가의 만화 속 명언이 골목을 지나가는 이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신다. 만화를 읽으며 걷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이다.

매화마을은 매화나무가 유별나게 많아 매화라는 지명을 썼다는데 배롱나무꽃(목백일홍)도 강변을 따라 지천으로 피어있다. 진한 다홍빛의 배롱나무꽃은 주변의 짙푸른 산하와 어울려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다. 배롱나무는 낙엽교목 또는 관목으로 분류될 정도로 키가 크지 않은 나무이다. 하지만 해묵은 배롱나무는 작은 거인과도 같은 늠름한 기품이 배어있다. 줄기는 약간 경사지게 구부러지면서 자라고, 가지는 옆으로 넓게 퍼져서 불균형의 부정형을 이룬다. 그런데 줄기와 가지는 아주 단단하고 매끄럽고 윤기가 나면서 고귀한 멋이 가득하다. 일본사람들은 배롱나무줄기가 그만큼 미끄럽다고 해 사루수베리(さるすべり). 즉 원숭이도 미끄러지는 나무라고 부른다.

배롱나무꽃의 진짜 아름다움은 한여름에 꽃이 만개할 때이다. 7월이 되면 나무 아래쪽부터 피어오르기 시작하여 9월까지 100일간 붉은 빛을 발한다. 그래서 목백일홍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저 꽃이 다 지면 벼가 익는다고 해서 쌀밥나무라는 별명도 얻었다. 배롱나무꽃은 작은 꽃송이가 한데 어울려 포도송이가 거꾸로 선 모양으로 피어나는데 탐스런 송이 송이가 윤기 나는 가지위로 치솟듯 피어날 때 그 화사한 자태에 취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그 뜨거운 땡볕아래서도 꽃 색깔을 오래 유지하며 묵묵히 피어나는 모습을 보면 청아(淸雅)한 기품을 느끼게 한다. 배롱나무꽃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벌써 날이 저물어져온다. 마을 끝에 위치한 남벌열차 카페에 올라 커피한잔 마셨다. 남벌열차는 폐열차를 구입해 만들었다. ‘남벌’은 이현세의 작품명으로 남북이 힘을 합쳐 일본 자위대와 싸우는 내용이다. 이 카페에 오르면 시간 열차를 타고 여행하는 기분이 드는데 일본군을 통쾌하게 처단하는 독립군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차창 바깥으로 보이는 배롱나무꽃이며 자연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잠시나마 마음의 안식을 선물한다.

과거 인구 3천명에 5일 장이면 북적이던 매화마을이 지금은 인구 400여명에 작은 마을이 됐다. 그럼에도 이곳은 마을 중심으로 가로지르는 하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주택과 상가 등이 깔끔하게 아기자기하게 배치돼 자연과 조화된 환경과 전통문화 등이 그대로 살아 있는 마을이다. 65년 된 숨은 사연들이 담겨져 있는 삼일다방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다. 계속 머무르고 싶은 마을이다. 그토록 깨끗하다는 일본의 농촌마을 보다 훨씬 위다. 내 평생 이렇게 청결하고 고전이 살아 숨 쉬는 농촌마을은 처음이었다.

저녁 8시 30분. 죽변항으로 이동해 바닷가를 향해 우뚝 솟아있는 시선호텔에 첫날 여장을 풀었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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