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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아파트 광장에 음악이 퍼진다. 이웃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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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아파트 광장에 음악이 퍼진다. 이웃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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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9.27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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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초가을 하늘은 드높고 푸르며 살랑살랑 불어대는 바람은 향기롭다. 릴케의 ‘가을날’이 떠오르는 지난 9월 24일 토요일 오후. 수원시 힐스테이트 영통아파트 중앙잔디광장에서 3,000여명의 관객이 모인 가운데 이색 음악회가 열렸다.

이날의 음악회는 수원목양교회가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지역주민과 음악으로 함께하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마련됐다. 음악회는 수원목양교회 홉 오케스트라와 수원장안시민․장안청소년 오케스트라가 함께 참가한 대규모 합동연주단이 주인공이었는데, 이 오케스트라는 목관악기․금관악기․현악기․타악기․피아노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105명의 단원이 연주했다.

이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수원목양교회 홉 오케스트라와 장안 시민․장안청소년 오케스트라를 모두 이끌어온 최세훈 교수가 맡았다. 그는 지휘에 머물지 않고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설명과 재미 등 감동 요소를 가미한 독특한 진행으로 1시간 20분의 공연시간을 알차게 꾸몄다.

첫 번째 연주는 ‘베토벤 교향곡 5번 4악장(Beethoven Symphony No.5(4th Mov)’을 시작으로 막이 올랐다. 베토벤 교향곡 5번은 운명이란 이름으로 대중에게 친숙한 곡이다.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라고 알려진 ‘빠빠빠 빰’으로 유명한 1악장 대신 이번 연주에서는 4악장이 연주됐는데 웅장하게 시작되면서 넓은 대자연을 바라보는 듯한 광활함을 느끼게 하는 곡이었다. 트럼펫을 비롯한 금관악기들이 목청껏 연주하는 팡파르가 백미인 곡이라 합동연주단의 색깔과 잘 맞았다. 왜 인류역사상 가장 많이 연주된 교향곡 가운데 하나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명곡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베토벤 교향곡 5번은 1808년에 완성되어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Viena)에서 초연되었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 30대 중반의 베토벤은 귀에 이상이 생기고, 영원한 애인으로 알려진 테레제 브룬스비크와 파국, 나폴레옹의 침공 등 시련이 겹쳤던 시대의 작품이다. 기법적으로 간결하며 뛰어나 단 한 음도 버릴 데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 번째 곡은 ‘마카레나의 성모(La Virgen De La Macarena)’가 연주가 됐다. 1944년 스페인의 작곡자 ‘베르나르도 바티스타 몬테르데’에 의해 작곡 되어진 트럼펫을 위한 협주곡이다. 투우사들의 기백과 마카레나의 성당에서 기도하는 구도자의 모습이 악곡에 잘 담겨있다. 스페인의 전설적인 투우사 중 한 명인 ‘호세 고메즈 오르테가’는 투우 경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성당을 찾아 보호의 기도를 올렸는데 이때 그가 찾던 곳이 스페인 세비야의 마카레나 성당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마카레나의 성모는 ‘투우사 보호자’의 상징이 되어 이 전통이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다.

세 번째 곡은 엔리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영화 ‘미션(Mission)’의 메인타이틀 곡이 연주됐다. 도입부에서 가브리엘 오보에(넬라판타지아)란 노래로 익숙한 멜로디가 나온다. 문명의 불모지로 향하는 선교사들의 여정과 원주민 과라니족의 마음까지도 움직인 오보에(Oboe)의 선율이 큰 감동을 주었다. 영화 미션에서는 가브리엘 신부가 과라니족에게 위협을 느낄 때 오보에를 연주하여 그들과 소통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에도 말은 통하지 않지만 음악으로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전달하여 원주민과 소통하려 하는 장면은 평화를 사랑하는 가브리엘 신부의 인도주의적인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어지는 특별초청 연주에서는 소프라노 정찬희의 독창이 이어졌다.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 중 ‘밤새도록 춤출 수 있어요(I could have danced all night)’와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Brindisi)’로 객석을 누비며 열광의 도가니를 만들었다. 끊이지 않는 앙코르 박수가 쏟아져 그리운 금강산으로 우아하게 마무리됐다.

‘밤새 춤출 수 있어요’ 뮤지컬은 알란 제이 러너가 작사하고, 프레데릭 로우(Frederick Loewe)가 작곡한 곡이다. 렉스 해리슨·줄리 앤드류스 주연으로 1956년 3월부터 1962년 11월까지 2,717회 공연하여 최대 기록을 만든 뮤지컬로 앤드류스에 의해 불려진 유명한 곡이다. 경쾌한 리듬과 여성 보컬의 청아함이 매력이다.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버림받은 여자’란 뜻으로 뒤마의 소설 ‘동백꽃 아가씨’가 원작이라고 한다. 뒤마가 당시 파리의 고급 매춘부인 마리 뒤플레시스를 모델로 쓴 소설이라고 한다. 초연 당시에는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지만 관객들이 너무나 좋아해 지금까지도 사랑을 받는다. 축배의 노래는 이 오페라의 주요 아리아로 듣는 순간 누구나 알 수 있는 노래다. KBS 열린음악회란 프로그램에 성악가가 나오면 대부분 이노래를 부른다. 정찬희 가수는 뛰어난 실력과 영혼을 울리는 목소리로 관객과 소통하는 소프라노 가수이자 팝페라 가수다. 국립오페라 합창단 단원과 미국 CCU 객원교수를 역임했는데 찬사를 받고도 남을 무대를 보여줬다.

그리고 특별초청 색소폰(Saxophone) 연주로 수원목양교회 최병화 권사가 중국가수 등려군(鄧麗君)의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달이 내 마음을 말해줘요)’을 들려줬다.

월량대표아적심은 우리나라에는 장만옥과 여명이 주연한 영화 ‘첨밀밀’로 유명해진 곡이지만 그 전부터 전세계 화교가 사랑하는 국민노래였다고 한다. 손의(孫儀)가 작사하고, 웡칭시(翁清溪)가 작곡한 곡이다. 가장 먼저 이 곡을 녹음한 사람은 진분란(陳芬蘭)으로 1973년 5월에 발행한 ‘꿈나라’에 수록되어 있다. 등려군은 1977년에 이 곡을 다시 리메이크했는데, 그녀의 대표작이 되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중국 및 외국 가수가 월량대표아적심을 리메이크 했다. 그러나 등려군의 버전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2010년 중국 골든 멜로디 상으로 월량대표아적심이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련하고 애절한 멜로디가 가을밤을 수놓았다.

특별초청 연주가 끝나고 연이어 ‘황야의 7인(The Magnificent Seven)’이 연주되었다. 잘 알려진 리메이크 작품으로 힘찬 리듬과 애잔하고 회한이 있는 듯한 선율이 특징이다. 곡의 완성도가 잘된 멋진 곡이다. 마지막 곡으로 어린아이들이 환호 소리와 함께 영화 ‘캐리비안 해적’의 사운드트랙이 연주됐다.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와 함성이 계속되고 어두움이 스며드는 밤이 아쉽기만 했다.

​이번 역대급 합동연주회는 기존 음악회와는 달리 전 세대가 모여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대중성을 가진 명곡들과 영화 음악처럼 유명한 곡으로 구성됐다.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인근 교회와 아파트 주민의 친절하고 아름다운 공연현장 안내가 더해지면서 마음 따뜻해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특히 아파트 공원에 울려 퍼지는 감성 가득한 클래식 음악은 누구나 발걸음을 멈추고 귀 기울이게 하는 힘이 있었다. 코로나19를 이겨내고 일상을 회복한 주민들에게는 작은 선물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음악회를 보려고 서울에서 일부러 내려온 한 가족은 “자녀들과 함께 보러 왔는데 지루하지 않은 프로그램으로 짜여 져 있어 오길 잘했다”면서 “오케스트라 공연을 새롭게 인식한 계기가 됐고, 딸이 예술고 진학을 꿈꾸는데 좋은 영감을 얻었다”고 기뻐했다. 수원목양교회와 지역주민이 만들어 낸 나눔의 현장이 멀리 서울에서 온 시민들의 마음까지 움직인 것이다.

음수사원(飮水思源). ‘물을 마실 때 수원(水源)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근본을 잊지 않음을 일컫는 말이다. 이번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음악회를 감상하며 고마운 음악의 근원(根源)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 지휘자 최세훈 교수, 소프라노 정찬희 가수, 색소폰 독주 최병화 권사를 비롯해 출연진과 스태프에게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음악회를 주선한 수원목양교회(담임목사 유태민)의 성도와 함께 물심양면 성원해준 수원시 힐스테이트 영통아파트 주민들의 노고에 찬사를 보낸다. 가을밤만큼 야외 음악에 적합한 날씨가 있을까. 오랜만에 이웃들과 함께 들은 음악이 가을밤은 물론 도시 전체를 아름다운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적시는 느낌이었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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