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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가을을 정가보다 싸게 판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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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가을을 정가보다 싸게 판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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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0.1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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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지난 10월 8일은 찬이슬이 맺힌다는 절기 한로(寒露)였습니다.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인데요. 가을을 맞아 붉게 염색된 다양한 가을 상품을 출시했습니다. 상품찬조는 고향 선배 ‘꽃씨맘씨농장’유 대표께서 해주셨습니다. 경기가 좋지 않아 불경기라 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가을 상품 하나쯤은 들여놓지 않으시렵니까. 지난 봄 가뭄에도, 여름 태풍에도 잘 견뎌 울긋불긋 한 것이 색상도 참 좋습니다. 성미 급한 나무는 초가을 비에 벌써부터 낙엽이라는 전단지를 한두 장씩 돌리며 호객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꼭 가을 상품을 사지 않으셔도 좋으니 보기라도 하세요. 청명한 푸른 하늘도 있고요. 여름하고는 다른 어딘지 모르게 외롭게 느껴지도록 갈대꽃 나부끼는 낙조도 준비했습니다. 붉은 낙조를 배경으로 날아가는 철새 떼 곁들여 감상하신다면 그 풍경 두고두고 기억되실 겁니다.

한들한들 코스모스 길도 준비했고요. 노란색 분홍색 흰색 만발한 국화축제도 마련했습니다. 부인병 특효 구절초, 독특한 향내를 가진 풍습(風濕) 치료제 강활 등 야생화 약초도 많이 있습니다. 이브몽땅의 ‘고엽’과 리챠드 클레이더만의 ‘가을의 속삭임’ 연주도 마련했어요.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도 판매합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도 있지만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는 어떠신지요. 윤동주의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도 추천해 드립니다. 구매하시는 모든 분께 안도현의 ‘가을 엽서’ 한 장씩 보내 드립니다. 가을 엽서를 보내려면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있어야합니다. 풍경이면 풍경, 음악, 문학, 분위기, 심지어 마음까지도 신비롭게 만들어주는 가을 상품으로 없는 것이 없습니다.

다가오는 10월 23일은 상강(霜降)입니다. 전국 산야에서 가을맞이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를 개최합니다. 막바지 가을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도록 부족함 없이 마련했으니, 많은 참여 바랍니다. 이 시기는 한로(寒露)와 입동(立冬) 사이로 가을의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는 대신에 밤의 기온이 매우 낮아지는 때입니다. 온도가 더 낮아지면 첫얼음이 얼기도 합니다. 단풍이 절정에 이르며 들국화도 활짝 피는 늦가을입니다. 당연히 추수가 마무리돼야 하고 겨울맞이를 시작해야 합니다.

유명 행사개최지를 안내하여 드립니다. 설악산 오색단풍, 용문산 노란은행잎, 민둥산 물결억새, 내장산 불꽃단풍, 순천만 황금갈대 등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가을 상품들을 진열해 놨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나 눈이 아닌 청명한 맑은 날 나무에서 날리는 낙엽을 맞는 맛이 어떠신지요. 단풍잎 책갈피에 끼워 넣은 어릴 적 향수도 한번 느껴 보세요.

다음 달 11월 7일은 입동(立冬)이 찾아옵니다. 동면하는 동물들이 땅 속에 굴을 파고 숨으며, 산야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풀들은 말라갑니다. 밭에 있는 무와 배추를 뽑아 김장을 담가야 합니다. 올해는 역대 최고로 무와 배추값도 비쌀뿐더러 양념값도 엄청 비싸대요. 김장을 포기하는 ‘김포족’이 늘어난데요. 지난번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에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바람 많이 부는 날을 택하여 낙엽을 날리는 재고정리 겸 감사의 마음을 담아 염가판매합니다. 무와 배추 그리고 마늘, 고춧가루를 싸게 팔 테니 꼭 김장하세요. 얼마 남지 않은 기간에 가을의 정취를 최대한 만끽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어 11월 22일은 소설(小雪)입니다. 찬바람이 불고 눈이 내릴 정도로 날씨가 추워집니다. 시래기를 엮어 달고 무말랭이나 호박을 썰어 말립니다. 또 겨우내 소먹이로 쓸 볏짚을 모아두기도 합니다. 주위에 가을 정서가 아직 남았는데 소설(小雪)이 오기 전까지 자리를 내 달라고 성미 급한 겨울 녀석이 성화입니다. 그때까지 자리를 비워두지 않으면 대설(大雪)로 덮어버린다고 찬 기운으로 으름장을 놓습니다. 비가 오는 날을 택해 눈물의 바겐세일로 점포정리를 해야겠습니다. 그때까지 안 팔리는 나뭇잎은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로 남기고 안 떨어지는 감은 까치밥으로 남겨둡니다.

머그잔에서 풍기는 진한 스페셜 코피 루왁(Kopi Luwak)향내를 맡으며 창밖의 비에 젖어 간신이 매달려 있는 나뭇잎과 함께 잊혀져가는 마지막 가을밤을 보내세요. 젖은 공기처럼 낮게 깔리는 첼로 음악을 곁들이면, 최고의 가을 상품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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