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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오감을 만족시켜준 문경새재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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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오감을 만족시켜준 문경새재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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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0.27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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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10월 22일 토요일.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을 하루 앞둔 날이었지만 다행히 쾌청한 날씨다. 아침 7시. 여느 때와는 달리 울긋불긋 곱게 차려입은 수원목양교회 170명의 성도들이 버스 5대에 나눠 타고 문경새재로 향했다. 이런 야유회는 코로나19 이후 4년 만이다.

10시. 어느덧 문경새재의 3관문 입구라고 할 수 있는 충북 괴산군 연풍면 원통리 주차장에 도착했다.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 절정에 이른 가을 산의 정취를 즐기려는 등산객의 발길이 주차장부터 오르는 길을 가득 메웠다. 그야말로 인산인해(人山人海)다. 나는 9살 손주 희찬이, 7살 쌍둥이 희건이와 지민이랑 가파른 3관문을 향해 올랐다.

문경새재는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사이에 있는 고개다. 고갯길 최고점의 높이는 해발 632m. 새재는 조령(鳥嶺)을 우리말로 읽은 것인데 ‘나는 새도 넘어가기 힘든 고개'라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다.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는 영남의 선비들이 죽령으로 가면 죽죽 미끄러지고, 추풍령을 넘어가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데 반해, 문경새재를 넘으면 말 그대로 경사를 전해 듣고(聞慶) 새처럼 비상하리라는 믿음 때문에 이 길로 넘나들었다고 전해진다. 산세가 깊어 사나운 짐승과 도적들을 만날 위험이 있어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들은 여럿이 모여 함께 산을 넘었다고 한다.

11시쯤 3관문에 도착해 잠시 쉬다가 2관문을 거쳐 1관문으로 내려갔다. 여기부터는 낮은 경사의 밋밋한 길로 이어져 걷기가 수월했다. 뒤에서 누군가 가볍게 밀어주는 듯 발걸음이 가벼웠다. 2관문에서 1관문까지 내려오는 넓은 길의 오른쪽은 우람한 바위와 깊은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로 정겨웠다. 길 양쪽으로 오래된 나무들이 단풍으로 물들어가고, 울창한 숲으로 이어져 가을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왼쪽은 아기자기한 작은 폭포에서 쏟아지는 물이 바람과 낙엽을 만나 자연의 신비함을 더해 주었다.

길옆 바위에는 지방관들이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기 위해 적은 비가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벽을 깎아내고 망치로 두드려서 새겨진 시비는 오랜 세월의 풍상에 흔적만 간신히 남아 있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치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나보다. 이름난 고개이다 보니 길 양쪽에 정자, 주막, 성황당, 교귀정 등 다양한 역사적 흔적들이 많았다. 1관문 인근에는 드라마 태조 왕건을 촬영한 세트장도 있다. 태조 왕건 이후에도 고려 시대 및 여말선초를 배경으로 한 KBS 사극 드라마를 촬영한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12시 20분. 2시간을 넘게 걸어 1관문 쉼터에 170명의 성도가 낙오 없이 전원 모였다. 이제 보물찾기를 할 시간. 목사님의 시작소리와 동시에 보물찾기가 시작되었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돌도 들쳐보고, 바위틈새와 나뭇가지 사이도 살펴보고, 쌓인 나뭇잎을 헤쳐보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가장 맑고 총명한 눈을 가진 우리 손주들은 남에게 전부 기부를 했는지 보물을 한 개도 찾지 못하고 허탈한 모습을 보였다.

문득 가을 소풍을 갔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큰 나무 밑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노래와 장기 자랑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시절. 저마다 집에서 싸온 맛있는 김밥과 음료수, 빵, 과자 등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날이었다. 그 당시에도 점심을 먹고 나면 꼭 이어지는 행사가 바로 보물찾기였다. 가장 기대되고 설렘을 감출 수 없는 시간. 보물 찾아봐야 고작 연필과 공책이 전부였지만 소풍가는 산은 보물 산이었다.

오후 1시. 문경새재에 있는 한 식당에서 돼지고기석쇠구이, 더덕구이, 도라지무침 등 푸짐한 한정식으로 꿀맛 같은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문경새재도립공원입구에서 열리는 ‘문경사과축제장(10월15일~10월30일)’으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사과 높이 쌓기, 사과껍질 길게 깎기, 사과 빨리 쪼개기 등 다채로운 사과체험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또 40여개의 부스에서는 감홍, 양광, 시나노골드 등 맛있는 사과와 오미자, 버섯 등 문경의 특산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사과를 재배하는 ‘문경대영농원’을 방문하기로 했는데, 이 농원의 장 대표께서 먼 길 오셨다면서 직접 문경새재 주차장으로 사과 100박스를 갖고 오셨다. 이를 마주한 수원목양교회 성도들은 약속이나 한 듯 “올해 사과 농사를 짓느냐고 얼마나 힘들었어요. 이 사과 참 좋네요.”하며 반갑게 맞았다. 장 대표와 사모님 역시 “참 오랜만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힘드셨지요?” 하면서 인사를 나누다 보니 사과가 모두 동이 났다. 구입을 못한 사람들은 택배신청을 하고 마무리했다. 문경대영농원 대표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13년 전에 이곳 문경으로 귀농해서 사과재배를 하고 있다. 10년 전부터 수원목양교회와 인연이 돼 농촌사랑-행복상생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문경사과는 일교차가 큰 백두대간 산간 분지 지역의 비옥한 토질과 기후, 기상재해가 없는 축복의 청정 자연환경에서 재배된다. 전국 최고의 사과재배 기술로 생산해 육질이 단단하고, 향이 짙으며, 당도가 높아 꿀사과라 불린다. 요즘 주력품종으로 판매되는 문경 감홍사과 역시 높은 당도를 자랑하며, 식감이 좋아 한번 먹어보면 다시 찾게 되는 대한민국 대표사과로 인정받고 있다. 가장 맛있다는 부사보다 평균 당도가 2~4Brix높다. 문경의 사과 재배 면적은 2,078㏊로 4만6,500t정도를 생산한다. 나는 무엇보다도 감홍사과의 크기에 놀랐는데 아주 큰 배 정도 크기였다. 사과재배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이 지역 전체 농업 소득의 30%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번 수원목양교회의 문경새재 야유회는 특별했다. 과거급제를 하고 문경새재를 넘는 신바람 나는 기분을 만끽한 힐링이었다. 비단결 같은 울긋불긋한 단풍, 계곡의 청량한 물소리, 은은하게 퍼지는 사과 향, 맛있는 고추장 더덕구이, 바위틈에서 살짝 고개를 내민 다람쥐도 만나는 등 오감을 만족시킨 최고의 행복한 여정이었다. 저녁 6시 수원에 도착했다. 어린 손자들의 밝고 명랑한 모습, 사과 농부와의 반가운 만남과 집에 가실 때 먹으라고 건네 준 반짝이는 사과가 파노라마처럼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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